자녀와의 열린 소통, 이렇게 해보세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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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가 큰 만큼 분노도 커진다. 칭찬이라도 때론 부담을 느낀다. 부모와 자녀의 관계에 대한 얘기다. 같은 말과 행동이라도 둘 사이에선 감정부터 앞선다. 서로를 잘 안다고 생각하는 데서 비롯됐기 때문이다. 방학은 자녀와 부딪칠 일이 많아지는 때다. 둘의 교감과 소통을 이뤄줄 분노와 칭찬의 기술을 살펴봤다. <편집자>

#“이 옷에 단추 달아달라고 몇 번이나 말했잖아.” 쏘아 붙이는 딸의 불평에 엄마는 미안하다가도 화가 앞선다. “아침부터 옷 타령이야. 옷이 그것밖에 없어”라며 함께 소리친다.

#밤늦게 귀가한 아빠의 눈에 TV·컴퓨터 게임에 몰두하는 아들·딸의 모습이 들어온다. “이렇게 빈둥거릴 거면 학원은 왜 다녀.” 아이들은 “잠깐 쉬는 모습만 보고 화를 낸다”고 대꾸하며 문을 쾅 닫고 나가버린다. 아빠는 화가 치밀어 올라 아이들을 몰아붙인다.

금쪽같던 자녀가 한순간 원수가 되는 순간들이다. 같은 상황과 행동이라도 상대가 부모, 자녀면 분노의 수준이 더 강해진다. 서울성북아동보호전문기관에서 자녀에 대한 부모의 분노를 연구·상담하고 있는 이서원 고려사이버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서로에 대한 기대수준이 높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자녀에게 기여한 것이 많은 부모는 자녀가 실망스러운 행동을 하거나 자신을 무시하는 듯한 말을 하면 ‘내가 어떻게 해줬는데’하는 생각이 들면서 서운함과 분노가 가중되는 것이다. 부모의 분노로 마음이 상한 자녀는 더욱 삐뚤어진 행동으로 맞받아치게 된다. ‘가족이니까 내가 이렇게 화를 내도 아끼고 사랑하는 속마음을 알겠지’하는 생각을 바탕으로 한 행동도 원인 중 하나다.  

아이들과 접촉하는 시간이 짧은 아버지의 경우 자녀의 단편적인 행동만을 보고 더욱 화를 낼 수 있다. 자녀를 하루 종일 보는 어머니는 자녀 행동의 원인과 결과를 알지만 아버지는 결과만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김형근 정신분석연구소 소장은 “청소년기에 부모 생각을 거역하는 건 자연스러운 과정”이라며 “아이의 반항을 이상하게 여기거나 비난하지 말라”고 조언했다. “부모 자식 간 갈등이 생겼을 때 부모가 화만 내는 모습을 보면 아이들은 갈등 해결의 유일한 수단이 분노라고 생각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김 소장은 “부모도 당연히 분노를 표출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표현하는지를 아는 것이 자녀와의 소통을 이루는 첫걸음”이라고 말했다.

<아이에게 화내기 전에 생각해보세요>

아이의 말 속의 진심을 보려고 한다=아이가 ‘서운해’란 말을 못해 화를 낼 수도 있다. 말없이 방문을 닫고 들어가는 아이의 행동을 나쁜 쪽으로 단정 짓지 않는다.

부모의 진심을 얘기한다=자녀의 행동으로 인해 갖게 된 생각을 솔직하게 표현한다.

부모 스스로 약자가 된다=자녀에게 “네가 텔레비전만 봐서 속 터진다”가 아니라 “네가 텔레비전만 봐서 엄마는 속상하다”고 말한다. 약자가 된 부모 앞에서 아이는 마음이 약해지고 행동을 바꾸려 한다.

아이의 화를 일단 받아준다=아이가 억지 논리로 화를 내도 일단 ‘네가 기분이 나빴을 수 있겠다’고 인정한 뒤 차근차근 대화를 시도한다.

싸움으로 번지기 전에 ‘타임 아웃’을 외친다=‘엄마 잠깐 나갔다 올게’라고 말한 뒤 혼자 따로 시간을 갖는다. 이때 반드시 말을 하고 나가야 아이가 감정이 상하지 않는다.

‘화 노트’를 만든다=내가 왜·언제·어떻게 화를 냈는지 기록한다. 나에 대해 되돌아 보는 계기가 되고 화도 조절할 수 있게 된다.

‘가족 감정 메모판’을 만든다=10점 만점에 2점이면 기분이 매우 나쁘다는 의미로 칠판에 그날의 기분 점수를 적는다. 그 이유가 뭔지 대화하고 서로 조심한다.

아이의 돌발행동을 예상한다=아침에 눈 뜨면 ‘오늘 아이가 어떤 말과 행동을 할지 모른다. 놀라지 말고 화내지 말자’며 스스로 다짐한다.

<아이가 이럴 땐 요렇게 대처하세요>

자녀가 버릇없이 행동할 때=아이의 행동을 ‘예의 없다’는 식으로 감정을 섞어 평가하면 아이를 더 반항적으로 만들 뿐이다. "엄마를 째려보고, 발로 문을 찼어”라는 식으로 아이의 행동을 객관화하면 흥분하지 않고 상황을 전달하는 부모를 보며 아이는 더 반항하기 힘들고, 대화를 시작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부모를 비난할 때=아이를 같이 비난하면 아이는 보복 당했다고 생각한다. 자녀의 행동으로 상처 받은 부모의 마음을 설명하고 대화를 시도한다. 아이의 부모 비난이 도를 넘을 경우 자녀가 더 어렸을 때 부모에게 상처를 받은 일은 없었는지 되돌아본다.

아이가 짜증을 자주 낼 때=아이 앞에서 짜증을 많이 내진 않았는지 돌아본다. 아이의 입장에서 대화를 시도해서 잘 안 되면 “~해서 짜증이 났니? 그럴 때 엄마가 밉지?”하는 식으로 예를 들어 물어본다. 아이는 부모가 자신의 짜증을 받아들일 수 있는 포용력이 생겼다는 것을 느끼고 자신의 감정을 말로 표현하게 된다.

아이가 공부를 게을리 하거나 성적이 떨어졌을 때="그렇게 했으면 95점은 넘어야지?”하는 식의 표현은 아이에게 보복으로 느껴져 공부 의욕을 떨어뜨릴 수 있다. 성적 하락에 대해 혼을 내기보다 “네가 속상할 까봐 엄마가 속상하다”고 말해 격려한다.

도움말=김형근 위니캇 정신분석연구소장
이서원 고려사이버대 교수

<칭찬에 대한 오해와 진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한다. 하지만 모든 칭찬이 효과를 발휘하는 것은 아니다. 부모의 부적절한 칭찬은 때론 아이의 의욕과 자신감을 떨어뜨리기도 한다. 심리학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칭찬에 대한 오해와 진실을 가려봤다.

머리가 좋다는 칭찬은 자신감을 향상시킨다

똑똑하다거나 영리하다는 평가는 노력 여부보다 타인의 평가에 따라 결정되는 인상을 주기 때문에 재능만 칭찬할 경우 자신감을 잃고 위축될 수도 있다. 똑똑하다는 타인의 시선을 유지하려면 실패하지 않아야 하므로 어려운 문제에 도전하기를 회피할 수도 있다. 인격이나 성격에 대한 과도한 칭찬도 부작용을 유발할 수 있다. 100점을 맞았거나 심부름을 잘했을 때 결과보다 노력한 과정을 구체적으로 칭찬하는 것이 좋다.

칭찬도 타이밍이 중요하다

아이가 칭찬받을 행동을 했을 땐 즉각 반응한다. 칭찬을 받은 기억은 상황과 연계될 때 가장 효과적이고 오래 저장된다. 당시 상황에서 한참 벗어난 뒤의 칭찬은 혼란을 줄 수 있다. 즉각적인 반응은 부모가 곁에서 아이의 행동을 항상 주시하고 있다는 느낌을 줘 아이가 자존감을 높이고 부모에 대한 신뢰를 키우는 촉매제가 된다.

질문도 가치 있는 칭찬이다

자신의 행동에 대해 부모가 질문할 때 아이는 부모가 자신에게 관심을 갖는다고 느낀다. 질문을 하기 위해서는 아이의 행동을 섬세하게 관찰해야 하기 때문이다. 질문할 땐 “이 부분의 문제를 해결할 때 어떤 아이디어를 사용했니?”처럼 구체적으로 물어 아이가 자신의 행동을 설명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아이가 노력한 과정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하도록 질문하는 것이다.

칭찬 스티커는 학습능력 향상에 효과적이다

칭찬 스티커 자체가 목표가 되는 주객전도(主客顚倒)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문제집 5장, 책 10권처럼 목표를 달성할 때마다 칭찬 스티커를 배부하면 아이들은 스티커를 빨리 받기 위해 중요한 과제는 소홀하게 된다. 칭찬 스티커는 전형적인 보상 방식이라 스티커가 사라지면 아이들의 의욕도 사라질 수 있다. 칭찬 스티커는 단순한 동기 유발제 기능에 머무르게 하고, 공부 자체에서 재미를 찾도록 유도해야 한다.

칭찬은 중독성이 있다

잦은 칭찬과 보상은 뇌를 칭찬 중독에 빠트릴 수 있다. 행동에 대한 보상이 주어져야 도파민이 분비되는 뇌를 칭찬 중독에 빠진 뇌라고 부른다. 처음엔 작은 보상에도 만족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더 큰 보상을 원하게 된다. 계속되던 칭찬이 사라지면 불안해하고 자신감을 잃기도 한다. 과다한 칭찬을 자제하고 아이의 행동 결과를 칭찬으로 마무리하는 습관을 줄인다.

도움말=정윤경 가톨릭대 심리학과 교수
최성애 감정코칭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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