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일본발 경제위기의 교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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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경제 동향이 아무래도 심상찮다. 미국 경제는 다우지수가 다시 10, 000선 아래로 떨어지는 등 예상 외로 빠르게 하락하고 있으며 세계 증시도 함께 춤을 춘다. 여기에다 일본의 금융 위기까지 겹쳐 국제 금융시장과 세계 경제는 한치 앞도 점치기 어려운 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이들 두 경제 대국의 움직임은 우리 경제에 바로 영향을 준다는 점에서 더욱 비상한 경각심과 함께 철저한 대비에 나서야 할 때다.

특히 도쿄(東京)발 '3월 금융 대란설' 은 미국 경제의 경착륙 못지 않게 발등에 떨어진 불이 됐다. 지급 불능 위기의 일본 은행들이 결산을 앞두고 대출금을 회수하거나 해외 유가증권을 대량 내다팔 경우 일본 기업 연쇄 부도는 물론 국제 금융시장에 충격으로 이어질 것은 뻔한 일이다.

한은 등은 "일본의 대한 투자는 40억달러 수준이라 최악의 상태는 오지 않을 것" 이라고 하지만 예사롭게 볼 일이 아니다. 3년반 전의 외환 위기 직전 상황을 떠올리면서 일본쪽 동향을 일일 점검하고 우리의 지불 여력을 확충하는 등 긴급 체제에 돌입해야 한다.

게다가 막다른 골목에 몰린 일본이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엔화 평가절하며, 이는 우리 수출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정부.업계는 대책반을 구성, 신속한 대응에 나서야 한다.

아울러 일본의 위기는 우리와 비슷한 점이 많다는 데에서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아야 한다.

일본은 거품이 꺼진 후에도 강력한 금융.기업 구조조정 대신 인위적인 부양정책에 급급해 왔다. 1992년 이후 1백30조엔의 재정지원에다 제로에 가까운 저금리 정책을 폈지만 경기는 물론 은행.기업 경쟁력은 여전히 바닥권에서 헤매고 있다.

그 결과 국가 빚은 불어나 국내총생산(GDP)의 1백30%에 이르고 금융시스템마저 마비상태가 됐다. 이제는 더 이상 동원할 수 있는 거시경제 정책수단이 동나버렸다.

우리 역시 일본 못지 않게 구조조정보다는 경기 부양에 급급해 왔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산은의 회사채 신속 인수.공적자금 투입.금리 인하 등 온갖 대책을 쏟아부은 결과 우리 밑천도 거의 바닥난 상태다.

이 덕에 경기가 반짝 회복하는 듯 보이지만 언제 곤두박질칠지 모르는 상황이다. 이런 점을 감안해 더 이상 퍼주기식 정책은 자제해야 한다.

정부가 최근에는 감세(減稅)를 흘리고 있다. 기업경쟁력을 높이고 서민 부담을 던다는 점에서 장기적으로 방향은 옳다. 하지만 아직 경기가 불투명하고 나라 빚이 1백20조원에 이르는 현 시점에서 바람직한지는 따져봐야 한다.

만약 단기 경기부양용 또는 선거용으로 활용할 생각이라면 위험천만한 일이다. 금리 인하 등 다른 정책에서도 일본의 전철을 밟아서는 안될 것이다.

경기 회복의 정답은 결국 꾸준한 구조조정뿐이고 체력강화뿐이란 교훈을 일본이 잘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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