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보다 현명한 아이들의 세계

중앙일보

입력

아이야. 이제 중학생이 됐으니, 네가 읽어야 할 책도 많이 달라지겠구나. 이제 동화라는 꼬리가 붙은 책은 안 보게 될 수도 있겠구나. 하기야 중학생이 되면서부터는 너희를 '어린이'라고 불러주는 사람들도 없을테니, 살아가는 태도 뿐 아니라, 읽는 책도 달라져야 마땅하겠지.

게다가 이제는 학교 공부에 쏟아야 할 시간이 점점 늘어나게 될 것이어서, 공부 외의 책을 읽을 시간은 점점 줄어들 거야. 중학생 쯤부터 차이가 나더구나. 책을 읽는 아이와 그렇지 않은 아이의 차이 말이야. 고등학생이 되고, 또 학교를 졸업한 뒤에 살아가는 태도에 있어서 그 차이는 너희가 지금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크게 나타난단 말이다. 그건 학교 공부를 잘 한 아이와 못 한 아이의 차이보다 훨씬 크단다.

그 동안 줄곧 이야기했지만, 책을 읽는 것은 학교 공부에 도움을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실제로 너희가 살아가는 데에 도움이 되기 위해서야. 아름답고 훌륭한 삶을 사는 슬기로운 아이는 학교 공부만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야. 물론 학교 공부를 게을리 하라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틈틈이 좋은 책을 많이 읽으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거다.

그런데 문제가 있어. 중학생 또래에 읽어야 할 책이 참 적다는 거야. 초등학생 쯤 되는 아이들이 읽을 동화책이나 그보다 어린 유치원 아이들이 읽는 그림책은 적다고 할 수 없을 만큼 꽤 많이 나와 있잖니? 그런데 이제 중학생의 생각과 생활에 맞는 책은 그리 많지 않은 것을 네가 잘 알 것이야.

어쩌면 중학생으로서는 어른들이 읽는 책 중에서 그나마 읽기 쉬운 책을 골라서 읽을 수도 있을 거야. 그런 면에서 너희들을 도울 수 있다면 참 좋겠구나. 덧붙이고 싶은 말은 동화 책이라고 해서 그건 어린 아이들이나 보는 것이라고 외면하지 말아 달라는 것이야. 그림을 섞어서 엮은 책이라고 해서 꼭 어린 아이들이나 봐야 하는 것은 아니야. 어른인 나도 동화책이나 그림책을 보면서 살아가는 데에 많은 도움을 얻는 게 사실이거든. 어린이의 세계는 그 무한한 상상력 때문에 우리 삶을 더 풍요롭게 해 주는 데 큰 도움을 준단다.

앞으로는 여기에서 중학생 쯤 되는 아이들이 읽어서 좋을 책들을 찾아보도록 애쓸 것을 약속하며, 오늘은 동화 책 하나 소개한다.

'나홀로 집에'라는 영화를 본 적 있지? 하나의 어린 아이가 영악하게 강도를 잡는 이야기인데, 그 진행 과정이 지나치게 과장되고, 또 너무 폭력적이어서 좋은 영화라고 이야기할 수는 없어. 지금 이야기하려는 '버스를 추격하라'(팻 허친즈 글, 로렌스 허친즈 그림, 서애경 옮김, 아이세움 펴냄)는 어찌 보면 '나홀로 집에'와 같은 방식의 책이라고 볼 수 있겠지만 그건 아니야.

아이들이 소풍가는 데에서 시작되는 이 책의 줄거리를 간단히 이야기하면, 아이들이 합심해서 강도를 잡는 거야. 뭐 뻔한 이야기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이야기의 흐름이 무척 재미있어.

아이들이 주인공이니, 당연히 이 책에 등장하는 아이들은 어른들보다 모험심도 강하고, 우스꽝스러운 어른들보다 훨씬 지혜롭단다. 아이들과 함께 소풍을 떠나는 선생님은 건망증이 심해 아이들보다 약속 장소에 늦게 도착하고, 강도들도 아이들에게 쉽게 붙잡힐 만큼 어리석지.

소풍 출발 시간에 늦은 선생님은 자신이 타고 온 버스에 두고 내린 가방과 지도를 찾기 위해 아이들과 함께 스쿨버스를 타고 24번 버스를 따라가게 돼. 한참 가던 중에 은행 강도가 탄 자동차와 추돌 사고가 나고, 선생님은 버스에서 가방과 지도를 찾게 되지. 그러나 그때 은행 강도들은 경찰을 피해 선생님이 탄 버스를 탈취해서는 그냥 떠나버리고 말아. 선생님 없이는 소풍이 어렵게 된 아이들은 선생님을 쫓아간단다.

이제 아이들과 선생님, 그리고 은행강도의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펼쳐지는 거야. 선생님과 가방이 바뀐 강도들은 아이들과 선생님이 있는 농장을 맴돌게 되는데, 여기에서도 다시 아이들은 강도들에게 당하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강도들을 사로잡게 되는 거야.

이 책 속의 어른들은 죄다 뭔가 모자란 사람들이야. 선생님, 경찰, 강도, 운전사 모두가 다 우스꽝스러운 어른들이지. 이건 동화의 세계에서만 만날 수 있는 어른들일 지도 몰라. 어른들의 이같은 어리숙함을 깨고 아이들이 강도를 잡고 사건을 해결하는 이야기는 옛날부터 어린이 추리소설 따위에서 흔히 보던 방식이지.

순식간에 읽어치울 수 있는 동화 책이야. 간단한 줄거리의 동화책을 통해 학교 공부에서는 느낄 수 없는 짧은 즐거움을 얻을 수 있었으면 좋겠구나. 만일 네가 이 책을 후다닥 읽어치우고, 한 순간 흥미롭게 웃을 수 있다면, 그건 네게 좋은 독서 경험이 되는 거야.

그런데 아이야. 이제 정말 걱정이다. 중학생을 위한 책들은 정말 고르기 힘들텐데 말이야.

고규홍 (gohkh@joins.com)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