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세주의 철학자의 행복 찾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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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는 얼마나 행복합니까? 혹은 얼마나 행복하고 싶으십니까? 행복을 주제로 한 이같은 질문은 이제 식상합니다. 마치 지하철 안에서의 한적한 독서를 방해하며 어느 종교를 선전하는 파렴치한의 턱없는 질문들과 비슷하게 들릴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행복에 대해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방법에서 서로 차이가 있을 수는 있어도 모두가 행복을 찾아가는 길에 너나없이 분주한 것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단지 '행복'이라는 단어가 '오랫동안 행복을 찾아 헤맸으나, 여전히 행복의 성(城)에 이르지 못한 사람들'로부터 식상하게 느껴지는 것 뿐입니다.

행복하지 않은 사람이 이야기하는 행복은 어떤 것일까요? 무명에 가까운 철학자로서 고독과 좌절, 고통을 겪으며 살았던 쇼펜하우어가 말하는 행복론은 지금 우리 삶에서 행복을 찾아내기 위한 하나의 실마리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불행한 철학자 쇼펜하우어의 행복의 철학'(프랑크 볼피 엮음, 정초일 옮김, 푸른숲 펴냄)은 쇼펜하우어의 미완의 저작물입니다. 행복한 삶이란 인간에게 불가능한 목표라고 생각했던 그는 발타자르 그라시안의 '세상을 보는 지혜'를 읽은 뒤, 행복론을 집필할 의도를 갖고 메모와 기록들을 수집하게 됩니다.

그는 자신이 겪은 고통 속에서도 삶을 행복하게 이끌어갈 수 있는 50가지 삶의 원칙들을 정리할 예정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자신이 행복론을 독립적인 저술로 완성하지 못했고, 이같은 집필 계획의 편린들이 담긴 그의 다른 저술들에서 이 책의 엮은이 프랑크 볼피가 추려내 한 권의 작은 책으로 낸 것입니다.

"이론화된 '삶의 지혜'는 '행복론'과 거의 유사한 뜻을 가진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삶의 지혜는 가능한 한 행복하게 사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이 책 17쪽에서)로 시작되는 이 책에서 쇼펜하우어는 "완벽한 행복은 불가능하며, 비교적 덜 고통스러운 상태만 기대할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 바로 이 사실에 대한 통찰은 "삶이 허용하는 만큼의 행복을 누리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이지요.

쇼펜하우어는 행복을 위해 본질적으로 필요한 것으로 명랑한 정서, 건강, 정신적 평온, 외부의 자산 등 네 가지가 필요하다고 전제합니다. 그 가운데 행복론이 가르쳐야 할 것은 외부의 자산 중 1) 당연히 필요한 동시에 꼭 필요한 자산, 2) 당연히 필요하지만 꼭 필요하지는 않은 자산이라면서 삶의 원칙 50가지를 이야기합니다.

삶에는 번민과 고통이 실재할 뿐이고, 행복과 즐거움은 환상이 조화를 부린 허상(虛像)임을 깨우치는 것, 그래서 더 이상 행복과 즐거움을 찾으려 하지 않는 것이 쇼펜하우어가 이야기하는 행복한 삶의 첫 번째 원칙입니다. 염세주의의 철학을 담은 원칙입니다.

이어 그는 "다른 사람이 그대보다 행복하다는 사실이 고통스럽다면 그대는 결코 행복해질 수 없으리라"는 세네카의 말을 인용하며, 제2 원칙을 이끌어냅니다. '자신이 하고자 하는 것과 할 수 있는 것을 깨닫는 것'이 제3의 원칙이 됩니다. 욕심에 대해서도 그는 같은 논조로 삶의 원칙을 이야기합니다. 욕심을 극대화하려는 새로운 시도가 바로 불행의 원천이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이어지는 쇼펜하우어의 삶의 원칙들은 우리가 삶에서 흔히 겪고 있는 불행을 향한 길을 하나 둘 정확하게 짚어냅니다. 독자들은 그가 제시하는 삶의 원칙들을 읽어나가는 동안 상당 부분 자신이 행복하지 않은 까닭을 짚어가게 됩니다. 어쩌면 이미 깨닫고 있는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여서 독자들의 흥미가 떨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행복은 이처럼 단순하고 지당한 삶의 원칙들을 망각하는 데에서부터 차츰 멀어지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쇼펜하우어의 다른 글에서처럼 이 책의 글은 어렵지 않게 읽힙니다. 삶에 밀착한 이야기들을 소재로 풀어나가는 염세주의자의 행복 찾기 50개의 원칙들은 오늘의 삶을 고통스럽게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다시 한번 되새김질 해야 할 잠언이 될 것입니다.

고규홍 (gohkh@join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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