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시원을 찾아가는 詩的 기행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사막'의 작가 르 클레지오가 아루시 족 유목민의 후예인 아내 제미아 르 클레지오와 함께 사막에 갔습니다. 프랑스의 사진작가 브뤼노 바르베는 그들의 여정에 동반, 사막의 풍광을 아름다운 사진을 담아냈습니다. 그들의 여행은 '어떤 뿌리 찾기 여행'이라 불릴 만한 것이지요. 제미아 가족의 시원(始原)인 사기아 엘 함라 골짜기, 곧 '붉은 강'으로 되돌아가는 여행인 것입니다.

그들이 여행 기록을 한 권의 책 '하늘빛 사람들'(이세욱 옮김, 문학동네 펴냄)에 담아냈습니다. 르 클레지오가 사막 여행에 대한 열망을 가졌던 것은 오래 전의 일이랍니다. 그가 사막의 전설적인 전사의 이야기를 다룬 '사막'(홍상희 옮김, 책세상 펴냄)이라는 소설을 쓰게 된 것도 사막으로의 회귀의 꿈에 더 많은 현실성을 부여해 보기 위함이랍니다.

"우리는 어디로 가는 지도 모르고 거기에 다다르리라는 확신조차 없이 무작정 떠났다. 지도도 마땅한 게 없었다. (중략) 물도 마을도 숲도 산도 없는 허허로운 300킬로, 마치 낯선 행성에서 달리듯이 그 길을 가야 한다. (중략) 우리가 지도에서 읽은 모든 지명들, 즉 드라고원, 가아, 임리클리, 와디 눈, 티리스 산, 스마라, 제무르 엘아칼, 와르크지즈 산 등이 음악처럼 시처럼 울렸다."(이 책 16-19쪽에서)

여행은 모로코의 남부 지방으로 통하는 길에서 시작됩니다. "깨어 있으면서도 꿈을 꾸고 있다는 기분"으로 그들의 여행은 삶의 시원(始原)을 찾아 떠납니다. 그들이 찾아가는 사하라 지역은 오랜 세월 동안 모로코인들과 서 사하라 지역 사람들 사이의 갈등 때문에 접근할 수도 없었지요. 지난 95년 이 지역의 평화조약이 성립된 것이 이들의 오랜 꿈이었던 여행을 가능하게 해 준 것입니다.

사막의 순례자들을 처음 반긴 사막의 풍광은 군사기지 '탄탄'의 드문드문 흩어진 집들과 병영, 그리고 사막의 냉랭한 분위기였습니다. 오랫동안 전쟁 지역이었던 사하라의 상황을 회피할 수는 없었던 게죠. 탄탄을 벗어나 순례자들은 사하라 사막과 비옥한 아프리카를 확연하게 갈라놓는 단층인 드라강 유역에 이르게 되며, 본격적인 사막 여행이 시작됩니다.

"이곳의 지형은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것들에 속한다. 사막의 화강암질 암반 위로 편암과 사암의 구릉들이 완만한 기복을 보이며 물결치고 있다. 관목 덤불과 약간의 아르가니에와 고무나무가 있는 걸로 보아 지하수가 제법 많이 흐르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안개에 가려 어렴풋하긴 하지만 멀리 골짜기의 건너편 사면이 보인다. 가다 고원이 시작되는 곳이다."(이 책 22쪽에서)

여행은 "거의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진행되며, "장관이라 할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마치 클레지오의 대표작 '사막'에서 독자들을 몰아 넣었던 끝모를 방랑, 그런 감동 속으로 작가 스스로가 빠져들어갑니다.

사막은 황량합니다. 황량한 것은 꾸밈이 없다는 이야기와 그리 다르지 않을 겁니다. 꾸밈이 없기에 사막에 들어서는 것은 삶의 원초적인 풍광을 확인하는 일이며, 순례자 자신이 사막의 정적 안에 원초적인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는 일입니다.

'묘지처럼 음산하지만 인간의 척도를 넘어서는 어떤 아름다움'이 담겨 있는 사막은 시간의 자취가 남겨져 있지 않습니다. 그곳 사막에서 클레지오 부부는 삶의 시원이자 이곳 사막의 역사를 하나 둘 떠올립니다. 그들 스스로가 이야기하듯, 계획된 여정이 아니라, 그저 발길 가는 대로, 혹은 의식이 흐르는 대로 그저 나아갈 뿐입니다.

숱한 전쟁과 기아와 가뭄 속에 살아 남기 위해 안간힘 했던 이곳 사람들의 살림 살이를 들여다 보는 일도 게으르지 않습니다. 사막은 아무런 변화가 없는 듯 하면서도 날마다 새로운 풍광을 빚어내고, 늘 새로운 삶을 만들어냅니다.

사람과 문명의 시원이 시(詩)처럼 펼쳐지는 사막 여행. 그 기록을 이토록 아름답게 담아낼 수 있었던 것은 '사막'에 대한 오랜 염원을 꿈꾸었던 '사막'의 작가 르 클레지오이기에 가능할 수 있었을 지도 모릅니다.

"사막에 들어가는 것보다 더 큰 감동을 주는 일은 없다. 어떤 사막도 다른 것과 닮지 않았지만, 사막에 들어갈 때마다 심장은 더욱 세차게 고동친다."(이 책 29쪽에서)고 풀어놓는 클레지오의 이야기는 그들 부부의 글 한 자 한 자에서 확인됩니다.

고규홍 (gohkh@joins.com)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