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금융가 위기설 여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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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경제 상황은 영 어둡기만 하다. 올 1분기 성장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되는데다, 잇단 금리인하와 증시부양조치를 포함한 경기부양책은 먹혀들지 않고 있다. 이런 가운데 미야자와 기이치(宮澤喜一)재무상이 최근 "일본의 재정은 파국에 가까운 상황" 이라고 실토해 일본 경제의 부정적인 측면을 더욱 부각시켰다.

◇ 공공부채가 큰 짐〓일본의 성장률은 지난해 1분기 2.4%로 그런대로 괜찮았지만 2분기엔 0.2%로 하락한데 이어 3분기엔 마이너스로 추락했다. 4분기에 다시 플러스로 돌아서긴 했지만 전문가들은 수출감소 등으로 올 1분기엔 다시 마이너스 성장을 한 것으로 보고 있다.

중앙정부의 부채는 지난해 말 3백65조엔에 달하고, 지방자치단체 등을 포함한 공공부채는 총 6백조엔으로 국내총생산(GDP)의 1백23%나 된다. 선진국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이다.

금리는 하루짜리 콜금리를 기준으로 연 0.15%에 불과하다. 지난해 8월 제로금리 정책을 포기하면서 0.25%로 올렸다가 지난달 말 0.1%포인트 내린 것이다. 과거처럼 제로금리로 복귀해야 한다는 의견도 많지만 그래봤자 0.15%포인트 인하여서 큰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실업자가 늘어나면서 소비도 줄고 있다. 지난 1월 실업률은 전후 최고인 4.9%까지 치솟았다. 같은 기간 가계소비는 1년전보다 0.5% 감소, 2개월 연속 하락세를 보였다. 기업의 설비투자를 반영하는 1월 기계수주액은 한달 전에 비해 11.8%나 줄어들었다.

◇ 금융가 위기설 번져〓도쿄 증시의 닛케이지수는 지난 2일 15년만에 최저인 12, 261엔까지 밀렸다. 금융기관들이 1980년대 후반 지수 4만엔대에서 주식을 대거 매입한 점을 감안하면 엄청난 평가손실을 보고 있다.

부실채권은 대출총액의 13%인 64조엔(지난해 9월말 현재)에 이른다. 금융기관 결산기인 이달에 각종 위기설이 나도는 것도 이 때문이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일본 연립여당은 지난 9일 한국의 증시안정기금과 유사한 주식매수기관을 신설하고, 금융기관 보유 부동산을 정부가 사들이는 긴급경제대책을 내놓았지만 주가가 오히려 하락하는 등 시장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이 상황에서 일본 정부가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것은 엔화 약세다. 엔화가치가 떨어지면 해외 시장에서 일본상품의 가격이 싸져 수출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최근 엔화 가치는 달러당 1백20엔에 육박하며 20개월만에 가장 낮아졌는데도 일본 정부는 외환시장에 개입하려 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모리 요시로(森喜朗)총리가 지난 11일 사퇴 의사를 밝히는 등 정치 불안이 심화하는 데다 근본적인 구조개혁이 없이 엔화 약세에만 의존할 경우 본격적인 경기 회복은 더욱 멀어질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오쿠다 히로시 닛케이렌(日經連)회장은 "개인소비 감소.주가하락.미국 경기 둔화가 큰 걱정" 이라며 "정국 안정과 예산 조기 집행이 필수" 라고 강조하고 있다.

주정완 기자jw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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