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놈계획은 정신나간 연구일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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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DNA독트린』은 인간 지놈 프로젝트에 관한 기존의 통념과 상식을 뒤엎는 '딴지걸기' 로 시종하고 있다. 지놈 프로젝트가 최종 완성될 경우 사회폭력과 알콜.마약 중독 같은 것도 없어지고 무병장수의 원더랜드가 올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에 냅다 찬물을 끼얹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기왕의 그런 약속이 '과장광고' 이자, 심지어 학문적 허구 내지 서구의 이데올로기에 불과하다고 독설을 퍼붓는다.

▶지놈 프로젝트는 '과장광고' 였다 = 실제로 이 책의 원제는『이데올로기로서의 생물학(Biology As Ideology) 』이다. 드러내놓고 기존 생물학의 논의에 융단폭격을 하겠다는 의도가 엿보인다.

이쯤되면 책 읽는 이는 당혹스러울 것이다. 대뜸 이런 의문부터 들 것이다. "아니 천문학적 재원 투자가 이미 결정됐고, 그 많은 유명 과학자들이 그 연구의 효율성에 대해 확신을 가지고 있는 마당에 이 무슨 뚱딴지 소리인가. "

저자 르원틴(72.하버드대 교수) 부터 소개하자. '뉴욕 타임스 북리뷰' 의 고정 필자인 그는 미국 과학아카데미 회원에 뽑혔으나 아카데미의 보수.정치적 입장에 반대해 사퇴했던 인물. 즉 미국에서의 자연과학 논의에 충분한 대표성을 가진 과학자임이 분명하며, 그의 저술로는 국내에 소개됐던『우리 유전자 안에 없다』(한울.1993) 가 있다.

이번 저술은 본래 CBS방송에서의 강연을 토대로 했기 때문에 구어체다. 읽기에 부담되는 글이 아닌데다 생물학은 물론 정치경제학.문학 등에 대한 교양까지 곁들이고 있어 자연과학 분야의 대중저술로 추천할 만하다.

아쉬운 점은 원서가 1991년에 발표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입장은 지난해 말 그의 저서에서도 재확인되고 있고, 책에서의 예견이 최근에 들어맞는 대목이 있어 외려 흥미롭다.

또 저자가 거물급이어서 시야도 다르다. 이를테면 이런 대목. "내가 알고 있기에 지놈프로젝트에 참가한 저명 생물학자 중 생명공학 기업의 이사 직책을 갖는 등 자신의 연구에 이해관계가 없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생명공학은 학문으로 돈벌이를 할 수 있는 자원이고, 그 위력은 프로농구에 필적한다. "

▶유전연구는 학문적 허구 = 그러면 이책은 생물학계 내부 고발자의 폭로서인가. 아니다. 설득력 있는 과학적 진실 제시는 읽는 이들을 공감케 한다. 그에 따르면 '유전자를 규명하면 인간 본질의 모든 것을 알 수 있다' 는 판단 자체가 잘못이다.

저자는 이것을 아예 '오류' '허구' 라고 못박는다. 즉 '인간은 유전자에 영향을 받을 뿐이며, 유전자에 결정되는 존재일 수는 없다' 는 얘기다.

'유전자+환경+개체의 특수성' 이라는 3박자가 동시에 상호 작용해 인간이라는 생물학적 종(種) 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실제로 생물학계는 인간은 위대한 종(種) 이며, 따라서 유전자 숫자도 10만개가 넘을 것이라고 봤으나 르원틴의 예견대로 3만개 내외로 밝혀진 것이 최근의 일이다. 곤충같은 하등동물의 유전자 수와 비슷한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그러면 왜 이 야단법석이었나 = 르원틴의 주장에 따르면 지놈 프로젝트란 '정신이 나간 연구' 다. 여기에는 복잡한 이유가 동시에 자리잡고 있다. 우선 '단순하고 용감한' 자연과학자들의 맹신이 문제다.

저자는 생물학자들이 '인간 이해에 복잡한 물음을 제기하지 않으려는 생물학 이데올로기' (96쪽) 에 스스로 취해 있다고 주장한다. 또 천문학적 연구비를 나눠쓸 수 있다는 '당근' 의 요인도 무시못한다.

저자의 결론은 음울한 전망으로 이어진다. "일부 생물학자들은 지놈 프로젝트에 대한 대중들의 끔찍한 환멸에 대해 경고했다. 사람들은 여전히 병으로 죽어가는 와중에 생물학이 지나치게 많은 것을 약속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제 과학에 품는 냉소적 태도도 커질 것이다."
(리처드 르원틴 지음/ 김동광 옮김/ 궁리/ 1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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