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기업 10,000개 시대 ‘카운트 다운’돌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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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기업청은 올 1월 말 기준 국내 벤처기업 수는 총 9천1백48개로 전년 말보다 3백50개 증가했다고 밝혔다. 이런 추세라면 국내 벤처기업 수는 올 4월 1만개를 돌파할 것으로 전망된다.

우리나라가 ‘벤처기업 1만 개 시대’를 맞게 된다.

중소기업청은 올 1월 말 기준 국내 벤처기업 수는 총 9천1백48개로 전년 말보다 3백50개 증가했다고 최근 밝혔다. 지난 해 말 기준으로는 모두 8천7백98개로 99년말의 4천9백43개보다 43.9% 증가했다. 한 달에 평균 3백22개의 벤처기업이 증가한 꼴. 중기청은 이러한 추세라면 올 4월 국내 벤처기업 수가 1만 개를 돌파할 것으로 전망했다.

업종별로는 1월 말 현재 제조업이 전체의 61.1%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으며 다음은 정보처리·소프트웨어업으로 33.2%를 점했다. 특히 정보통신·소프트웨어업은 지난 해 이와 관련한 창업이 급증하면서 전체 벤처기업 중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크게 증가, 99년 말 24.3%에서 2000년 6월 31.3%, 그해 12월 33.2% 등으로 가장 높은 증가세를 보였다.

지역별로는 서울·인천·경기 등 수도권의 벤처기업 집중도가 지난 해 말 기준 71.4%를 기록, 99년 말의 67.3% 보다 더욱 심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지방벤처 인프라 확충 등의 영향으로 지난 해 9월부터 수도권 집중도가 다소 둔화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처럼 국내 벤처기업 수가 1만 개를 앞두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업계에서는 다양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데 대체로 환영하는 분위기다.

배틀탑 이강민 사장은 “93년 대기업을 뛰쳐나와 처음 벤처업계에 발을 내디뎠을 때만 해도 주위에서는 격려의 말보다 우려의 말을 많이 했다”며 “아이디어와 열정만으로 앞만 보고 뛰는 동안 생소했던 벤처라는 말이 이제는 어느새 21세기 최대의 화두로 떠올랐고 또 벤처기업 1만 개 시대가 도래했다는 사실에 감회가 새롭다”고 말했다.

디지토 김근태 사장도 “벤처기업이 21세기 코리아의 성장 엔진으로 등장하게 됐다”며 “국제경쟁력과 투명성을 제고해 우리나라의 경영 문화가 혁신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후이즈 이청종 사장은 “세상이 급속하게 변화해 가는 시대에서 벤처는 필연적인 흐름”이라며 “한국의 벤처 중에 기술력을 갖춘 벤처가 많이 생겨나는 것은 무척 흐뭇한 일”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아직 1만 개까지 늘어나기에는 채워야 할 내용이나 인프라가 너무 부족한 것 같다”며 우려를 나타내기도 했다.

지오인터랙티브 김병기 사장은 “국내 벤처기업 1만 개 중에서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최소 1백개 정도의 기업이 국제경쟁력을 갖춘 최우량 기업으로 성장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소망을 피력했다.

“양보다는 질”이 중요

벤처기업의 폭발적인 증가도 좋지만 질적인 성장이 더 중요하다.

하지만 이에 대해 날카로운 비판을 가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소프트랜드 신근영 사장은 “벤처기업이 1만 개니 2만 개를 넘어섰느니 하는 숫적인 내용은 결코 중요하지 않다”며 “단 한 개의 벤처기업이 있더라도 세계적인 기업으로 발전할 수 있으면 1만 개의 쓸데없는 벤처기업이 있는 것보다 더 좋다”고 말했다. 그는 또 “중기청에서 1만 개의 벤처기업 운운하는 것은 공직자들의 생색내기 전시행정의 표본”이라며 “진정으로 벤처기업을 도와주고 지원해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테라의 박상훈 사장은 아예 “벤처 1만 개 시대라니 정말 어처구니가 없다”며 “누가, 누구를, 어떻게 1만 개의 벤처기업이라고 할 수 있는지 그 정의를 알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벤처기업 CEO들은 벤처 1만 개 시대의 도래에 대한 나름대로의 의의를 부여하고 있다.

D·I·B 한승준 사장은 “디지털과 인터넷 기반의 새로운 기술을 바탕으로 한 정보통신 혁명이 벤처 탄생의 촉발제이기에 IT를 기반으로 한 신기술이 산업 전체와 개개인에 대한 막강한 영향력을 미치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바이텍시스템 이백용 사장은 “요즘 벤처업계가 어려움을 많이 겪고 있다고는 하지만 벤처기업의 본질은 시장을 예측하고 남과 다른 아이디어와 기술로 미래의 시장에 도전하는 정신인 만큼 성공 확률도 낮고 일부만 살아남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며 “이러한 면에서 볼 때 벤처기업 1만 개 시대의 도래는 어려운 중에서도 진정한 벤처의 정신을 이해하고 자신의 이상을 위해 도전하는 많은 용기 있는 벤처기업인들의 힘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밝혔다.

조이인박스 김신홍 사장은 “벤처 1만 개가 주는 의미는 우리 산업 곳곳에 자리잡고 있는 기존의 관행과 낡은 틀을 개혁시킬 수 있는 작은 불씨들이 1만 개 지펴졌다는 의미”라며 “그 불씨들이 튼튼한 불기둥으로 커져갈 때까지 아직 벤처 1만 개는 작은 희망의 불씨에 불과하다”고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배틀탑 李사장은 독특한 견해를 밝혔다.

그는 “전문 사설 연구소 1만 개를 가진 나라에서 살고 있다는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며 “1만 개의 벤처기업이 아직 제대로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벤처기업의 기본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분야에 역점을 두어 그 분야에서 최고를 이룰 때만이 진가를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을 본다면 현재 우리는 디지털 강국으로 갈 수 있는 지름길을 걷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오인터랙티브 김사장은 “신경제, 디지털 경제의 주축으로 벤처기업의 저변이 확대되고 우리나라도 경제 구조의 패러다임 이동이 시작됐다는 데 그 의의가 있다”고 밝혔다.

인재육성 프로그램 마련 절실

업계에서는 이러한 시대에 해결해야 할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도 주저하지 않았다. 우선 정부의 지원 강화와 간섭 배제 등이 선행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디지토 김사장은 “코스닥 문호 확대, M&A 관련법의 정비, 재벌 구조 및 금융권 개혁이 우선적으로 선행돼야 한다”고 지적했으며 소프트랜드 신사장은 “벤처기업들이 스스로 자생력을 갖고 커나갈 수 있도록 가급적 정부의 간섭이 배제돼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후이즈 李사장은 “정부 차원이나 학계, 여러 벤처 관련 기관의 체계적인 지원 프로그램이 마련돼야 할 것이며 특히 벤처 1만 개 시대에 걸맞는 인재육성 프로그램 마련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꼽았다.

벤처기업 내부의 문제 해결이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도 많았다.

큐컴리눅스 남정우 사장은 “창의적인 기업문화를 조성하는 것이 최대의 관건”이라며 “진정한 기업 경쟁력이 무엇인지를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때가 왔다”고 말했다.

조이인박스 김사장은 “벤처들은 외부적으로는 산업의 기존 관행과 자금력의 한계라는 적에 둘러 쌓여 있고 내부적으로는 경영 능력 부족, 인적자원 부족, 도덕적 해이 등으로 고민하고 있다”며 “따라서 벤처기업가들은 쉽게 기존 관행과 타협하려는 안이함을 버리고 투명하고 활기찬 새로운 기업문화를 만든다는 사명감을 가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한국의 벤처 1만 개 시대에 대해 미국 실리콘밸리에 본사를 둔 IT전문 글로벌 홍보대행사 호프만에이전시 미첼 허먼 아태지역 매니저는 다음과 같이 밝혔다.

“한국의 벤처기업은 창업 열풍을 바탕으로 몇 년 사이에 급속한 성장을 이루어왔다. 특히 정보기술(IT) 부문에서의 성장률은 매우 두드러져 전체 벤처 산업을 이끄는 것에서 나아가 한국의 산업 전반을 주도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IT 부문의 성장률은 아시아 지역뿐만 아니라 전세계를 통틀어서도 가장 높은 수치를 보여주고 있다.

물론 최근 경기 불황으로 많은 벤처기업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이는 성장의 한 과정일 따름이다. 오늘날 한국 벤처 산업은 ‘젊은이들의 용기’와 뛰어난 아이디어, 기술력, 벤처 캐피털과의 결합이 어우러져 양적인 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 그러나 양적 성장과 궤를 같이 해야 하는 것이 바로 질적 성장이다. 이를 위해 한국에서 인정받는 기술, 아이디어와 확실한 수익 모델 제시를 통해 해외 진출을 가속화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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