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일상 문화의 의미 읽어내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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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시시한 것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가만 생각해 보면, 우리 주위의 얼마나 많은 것들의 이름 앞에 '시시한'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 지 잘 가름할 수 없습니다. 시시한 것들이다 보니 자연히 별 관심을 가지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시한 것들은 나름대로 우리네 살림 살이에 없어서는 안 될 한 축을 갖추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단지 워낙 흔해빠지고, 눈에 들어오지 않다 보니, 그 의미를 찾으려 애써 본 적이 없기 때문에 그 시시한 것들이 얼마나 많은 지 가름하기조차 어려운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우리 시대 일상 속 시각 문화 읽기'라는 부제가 붙은 화가 강홍구 님의 새 책 '시시한 것들의 아름다움'(황금가지 펴냄)을 읽다 보면 바로 그 시시한 것들에 대한 생각이 달라집니다.

겉 표지 사진부터 참 시시합니다. 골목 길에 버려지다시피 내놓은 헌 의자 세 개. 전혀 아름답다 할 것 없는 무채색 톤의 연립주택 옥상의 물탱크들. 그저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지만, 딱히 그 풍경의 의미나 미학을 셈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을 겁니다.

지은이는 이 책에서 자신이 직접 촬영한 사진들을 보여주면서 우리 주변의 시시한 것들의 의미를 찾으려 애씁니다.

"빈 방의 세입자와 잃어버린 개와 사람을 찾는 문자들은 세련된 예술품이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거기서 전시장에서 만나는 서예, 광고에 쓰이는 세련되게 디자인된 문자들이 잃어버린 감정과 삶의 호흡을 읽는다. 그 호흡은 양식화된 미술품이 잃어버린 원시적인 힘이다."(이 책 13쪽에서)

전신주에 붙은 손글씨로 쓰여진 포스터에서 지은이는 '의사 소통의 원초적 형식'을 읽어낸 것입니다. 지나친 해석이라고 나무라야 할까요? '시시한 것'에 대한 탐사는 계속됩니다. 요즘 웬만한 젊은이들 수첩 한 구석에 어김없이 붙어 있는 스티커 사진을 지은이는 '본질을 표현하기 위해 찍는 사진'이 아니라, 일종의 이미지 게임이라고 규정합니다.

이 시시한 스티커 사진이 갖고 있는 기호학적 의미를 찾아내기 위해 지은이는 일종의 의식(儀式)처럼 여겨졌던 과거의 사진 찍기의 상황을 들춰냅니다. 그것은 개인의 인격과 가족의 정체성의 표상을 만들어내기 위한 의식이었기에 대를 이어가며 사진틀과 앨범 안에 소중하게 간직됐었지요. 그러나 스티커 사진은 발작적 혹은 충동적으로 가볍게 찍어대고 찍은 즉시 현상돼 나오며, 빨리 변색되어 사라집니다.

이같은 비교에서 지은이는 스티커 사진의 배후에는 자본과 이미지화가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스티커 사진의 이미지화 과정은 마치 존재 자체를 증거하고 이를 곧바로 환상으로 만드는 과정이라고 합니다. 그것은 또 지금 우리가 마주친 현실적 삶의 조건이라고 짚어냅니다.

염색한 머리카락과, 남성들의 장발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 있을까요. 단발령에서부터 70년대의 장발 단속이 가지는 사회적 의미를 검토하는 것에서부터 지은이의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장발은 한때 풍기문란 사범의 주표적이었지만, 지금은 단속 대상이 될 수 없지요. 우리 사회의 머리 스타일의 자유는 이미 제도화했다고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책은 무겁지 않아서 술술 읽힙니다. 아니, 어쩌면 무거운 이야기라 할지라도 바로 우리의 삶에 밀착한 갖가지 시각적 기호들을 분석하고 있는 것이기에 흥미롭게 읽히는 것일 지 모릅니다. 그냥 현상을 보여주는 데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은이는 하나의 문화적 현상을 놓고, 치밀하게 분석하려 애쓰고 있습니다.

'은폐된 공중 지하실, 옥상' '정보는 많고 의미는 없는 간판들' '괴로운 천민 자본의 징표, 버스 정류장과 가로등'에서 '권력의 기호에 대한 미친 짝사랑, 돈' '위계와 효율의 풍경, 사무실'에 이르기까지 우리 시대의 일상에 대한 폭넓은 고찰은 독자들 자신의 삶을 의미있게 재해석해내는 데에 적지 않은 도움을 줄 것입니다.

'우리를 에워싼 시시한 시각 문화에 대한 불만을 더 많이 갖게 되기를' 희망한다는 지은이는 그 불만이 '시시한 것들을 진짜 아름다운 것으로 바꾸는 데 보탬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머리글에서 이야기합니다.

아무 생각 없이 지나치는 일상 문화를 다시 한번 돌아보고, 그 안에서 의미를 찾아내는 일, 그것은 곧 우리 주위를 혹은 우리 자신을 아름답게 가꿔나가는 첫 걸음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그런 뜻에서 이 책은 독자에게 충분히 의미를 던져주는 책이라 하겠습니다.

고규홍 (gohkh@join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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