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LB] '안타제조기' 웨이드 보그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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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저리그 역사에서 안타에 관한 기록들을 회고해 본다면 아마도 타이 캅이나 피트 로즈, 행크 에런이나 스탠 뮤지얼 같은 대스타가 먼저 떠오를 것이다. 캅과 로즈는 메이저리그 역사에서 두 명뿐인 4천안타 달성자이고, 에런은 이 부문에서 역대 3위이며, 뮤지얼은 에런 이전에 내셔널리그 최다 안타기록 보유자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타에 관한 기록에서라면 당연히 20세기 후반기에 하나의 전설을 만들어낸 웨이드 보그스도 뽑아야 할 것이다. 보스턴과 뉴욕 양키스를 거치며, 1999년을 끝으로 템파베이에서 은퇴한 보그스에 대해 팬들은 어떤 기억들을 가지고 있을까?

보그스는 비록 통산 안타수에서는 3010개로 앞서 언급한 네 선수들과는 현격한 차이를 보이고 있지만, 5번이나 아메리칸리그 타격왕을 차지하였고, 그 중 네 번은 1985년부터 1988년까지 4년 연속으로 이루어졌다.

또한 그는 18년간의 선수생활 동안 14번이나 3할 이상을 기록했을 정도로 타격에 재능이 있는 선수였다. 1985년 보그스는 시즌을 .368로 끝내며 양대리그 통틀어 가장 높은 타율을 기록했다. 이는 2000년 노마 가르시아파라가 .372의 타율을 기록하며 깨기진 했지만, 1957년 테드 윌리엄스가 기록한 .388의 타율 이후 보스턴 선수로서는 최고의 기록이었다. 또한 이 해에 보그스가 기록한 240안타는 1930년 이후 가장 많은 안타였다.

하지만 그를 특별하게 만드는 기록은 역시 1983년부터 1989년까지 이루어낸 7년 연속 2백안타의 대위업이다. 역사상 가장 많은 안타를 쳐냈던 로즈도 3년 연속 2백안타가 최고의 기록이었고, 1927년부터 1930년까지 4년 연속 2백안타를 쳐냈던 피츠버그의 폴 웨이너의 기록보다도 훨씬 앞선다.

더욱이 이번에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데이브 윈필드는 보그스보다 100개나 더 많은 안타를 쳐냈지만, 단 한 번도 한 시즌 200안타를 기록하지 못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그의 기록이 얼마나 갚진 것인지를 알 수 있다. 19세기와 20세기를 통틀어 7년 연속 200안타를 기록했던 선수는 보그스뿐이었다.

1976년 FA 드래프트에서 보스턴에 의해 7라운드로 지명된 보그스는 이미 신인시절인 1982년부터 그의 뛰어난 재능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마이너리그에서 5년 연속 3할을 기록했던 보그스의 재능은 이 해 .349의 타율을 기록하며 꽃 피웠다.

그리고 이듬 해인 1983년 210안타를 기록하면서 보그스는 7년 연속 2백안타의 대위업을 시작했던 것이다.

1986년, 보그스는 생애 처음으로 월드시리즈 무대를 밟았다. 하지만 팀은 뉴욕 메츠에게 7차전 끝에 패함으로써 우승반지를 끼지는 못했다. 적어도 실력면에서는 우승반지가 당연한 것처럼 보였지만, 신이 그에게 우승반지를 허락하기까지 10년의 시간이 걸려야만 했다.

1992년, 자유계약 신분을 얻은 보그스는 뉴욕 양키스로 이적했고, 그로부터 4년 뒤 드디어 우승반지를 얻을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소속팀인 양키스가 리그 챔피언쉽 시리즈에서 볼티모어를 꺽으며, 18년만에 월드시리즈 에 진출한 것이다.

물론 행운이 그리 쉽게 찾아오지는 않았다. 양키스는 초반 애틀랜타의 막강 선발진에 눌려 초반 2연패로 몰려 있었기 때문이다. 시리즈는 4차전이 최대의 승부처였다. 8회초 동점 3점포를 터트린 짐 레이리츠의 활약으로 반전의 기회를 얻은 양키스는 결국 시리즈를 6차전에서 마감하며, 보그스에게 처음이자 마지막 월드시리즈 우승반지를 가져다 주었다. 10년전 적으로 만났던 대릴 스트로베리와 동지가 되어 보그스는 10년한을 풀었던 것이다.

미국시간으로 1999년 8월 7일, 보그스는 자신의 야구인생의 마지막 영광을 얻게 되었다. 이 날 보그스는 전날 경쟁자였던 토니 그윈이 먼저 3천안타를 달성한 것에 대한 분풀이라도 하듯 3안타를 몰아치며, 역사상 23번째로 3천안타의 대위업을 달성했다. 그 3천안타는 홈런으로써 이루어졌는데, 보그스 이전 22명의 선수 중에서 홈런으로써 3천안타를 달성했던 선수는 아무도 없었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 출전할 국가대표선수 제의를 받기도 했지만 보그스는 "나 때문에 젊은 유능한 선수들의 기회가 빼앗기지 않을까 우려된다"며 그 제의를 정중히 사양했다.

이렇듯 최고의 야구인생을 살았을 뿐만 아니라 후배선수들에 대한 사랑도 지극했던 보그스. 아마도 몇년 뒤에는 그를 명예의 전당에서 보게 될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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