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남철수 ‘기적의 배’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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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6호 31면

2001년 10월 14일 일요일 아침, 미국 뉴저지주 뉴턴의 수도원에서 한 수사(修士)가 87세로 세상을 떠났다. 그 수사는 한국전쟁 당시 흥남철수에서 피란민 1만4000여 명의 목숨을 구했던 메리디스 빅토리호의 레너드 라루 선장이었다. 라루 선장은 한국전쟁이 끝난 뒤 54년 미 뉴저지주의 성 베네딕도 수도원에 들어가 마리너스란 수도명으로 평생을 살았다. 사람들은 흥남에서의 체험이 그를 수도원으로 인도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삶과 믿음

50년 겨울, 흥남에서는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한국전쟁 당시 중공군의 개입으로 장진호에서 포위됐던 국군과 연합군은 많은 희생자를 내고 함경남도의 흥남을 통해 철수했다. 군대 대부분은 이미 서둘러 철수했고, 흥남은 적의 포화로 화염에 싸여 있었다. 이때 라루 선장이 이끈 메리디스 빅토리호가 흥남항에 정박해 있었다. 그는 선원들에게 “눈에 보이는 모든 사람을 한 명도 빠짐없이 구출하라”고 명령했다. 메리디스 빅토리호는 본래 승무원 35명 외에 겨우 12명 정도 더 태울 수 있는 규모의 배였다. 하지만 메리디스 빅토리호는 해안에 남아 있던 1만4000여 피란민 모두가 승선할 때까지 포화가 쏟아지는 항구에 정박해 있었다.

메리디스 빅토리호는 화물선으로 건조된 배였다. 많은 수의 피란민을 수용할 아무런 시설도 갖추고 있지 않았다. 배 안에는 물이나 음식은 물론 통역과 의료진도 없었다. 더구나 이미 배 안엔 300여 t의 제트연료가 실려 있어 자칫하면 대형 화재가 발생할 위험도 있었다. 그야말로 죽음의, 공포의 항해였다.

그러나 메리디스 빅토리호는 기뢰를 뚫고 사흘간의 항해 끝에 드디어 거제도에 도착했다. 이 사흘간의 항해 중 단 한 명의 사상자도 없었다. 오히려 5명의 아기가 새로 태어났다. 이후 메리디스 빅토리호의 흥남 철수 이야기는 기적의 배라는 책으로 소개되기도 했다.

마리너스 수사는 흥남철수에 대해 이렇게 회상했다고 한다. “저는 때때로 그 항해에 대해 생각합니다. 어떻게 그 작은 배가 그렇게 많은 사람을 태울 수 있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한 사람도 잃지 않고 끝없는 위험을 극복할 수 있었는지를 생각합니다. 그러면 그해 크리스마스에 황량하고 차가운 한국의 바다 위에서 하느님의 손길이 제 배의 키를 잡고 계셨다는 명확하고 틀림없는 메시지가 다가옵니다.”

우리는 과거에서 역사를 배워야 한다. 한국전쟁 중 16개 나라가 전투병을 파병했다. 수많은 외국의 젊은이들이 이 땅에서 피를 흘렸다. 또한 5개 나라가 의무지원을, 33개 나라가 물자지원을 했다. 안타깝게도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는 국민이 그리 많지 않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발전은 결코 저절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수많은 나라의 도움과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우리는 이들 나라에 분명히 큰 빚을 지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과거를 잊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는 어떠한 경우에라도 이 땅에 더 이상 참혹한 전쟁이 없도록 평화를 지켜낼 수 있기 때문이다.



허영엽 천주교 서울대교구 대변인·문화홍보국장으로 일하고 있다. 오랫동안 성서에 관해 쉽고 재미있는 글을 써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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