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혁신형 제약기업에 혁신이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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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신성식
선임기자

국내 제약회사는 잡초 같다. 수없는 위기를 넘기며 버텨왔다. 복지부는 2000년 의약분업 때 “처방전이 공개되면서 약의 우열이 드러나 망하는 데가 속출할 것”이라고 장담했다. 하지만 실제는 되레 늘었다. 비결은 리베이트였다. 실력은 필요없었다. 정부 단속이 강화되자 시세의 150배 번역료를 지급하는 등 기발한 수법을 개발한다.

 정부는 올 4월 리베이트 근절 초강수를 뒀다. 6506개 약품의 보험인정가격을 평균 14%(연간 1조7000억원) 내렸다. 제약회사에는 핵폭탄이었다. 무리한 정책이었다. 그런데도 국민들이 동의한 이유는 사회악(리베이트) 근절이라는 정부의 강력한 의지에 공감했기 때문이다. 제약회사도 ‘리베이트 원죄’ 탓에 꼼짝없이 따를 수밖에 없었다.

 보건복지부는 제약회사들이 복제약 리베이트 영업 대신 신약 개발로 방향을 틀도록 유도하기 위해 18일 ‘혁신형 제약기업’을 43개 선정했다. 이들에는 법인세(234억원) 감면 혜택, 정부 연구개발사업 가점 등 10가지가 넘는 혜택이 간다. 그런데 여기에 든 기업들 중 몇 군데는 최근에 리베이트 때문에 행정처분을 받았거나 형을 선고받은 데가 끼여 있다.

 특히 혁신기업이 된 뒤 리베이트가 드러났을 때 인증을 취소하는 요건이 너무 느슨하다. 2010년 11월 쌍벌제(리베이트받는 의사도 처벌하는 제도) 시행 이후 발생해 행정처분을 받은 경우에 한정했다. 그 전의 리베이트는 봐준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현실을 모르는 조치다. 리베이트는 좀체 드러나지 않는다. 꼭꼭 숨어있다가 몇 년 뒤 우연한 계기로 드러난다. 그렇다고 10년, 20년 전 것까지 들춰 감점을 주자는 건 아니다. 1년 반 전까지로만 한정한 것은 분명히 문제가 있다.

 복지부는 브리핑에서 “리베이트는 과거 관행이었고 생존을 위한 불가피한 방식이라는 의견도 있다”며 “미래 역량을 보자는 취지에서 그리했다”고 설명했다. 그렇다고 2, 3년 전 리베이트 영업 사실이 드러난 회사를 혁신기업이라 부를 수 있을까. 게다가 취소 기준이 리베이트 관련 행정처분인데 어떤 경우 사건 발생 후 처분까지 몇 년이 걸리기도 한다.

 신약 위주의 혁신기업 정책을 시행하면서 여기에 든 기업의 복제약 건강보험 가격을 우대하는 것도 앞뒤가 안 맞다. 43개 혁신기업 중 신약을 내놓은 적이 있는 데는 12개에 불과한 점도 신약 중시 정책의 당초 취지를 무색하게 만든다. 탈락 기업의 반발을 걱정해 무더기로 지정하다 보니 사단이 벌어졌다.

 적어도 혁신기업이라면 수십 개여서는 곤란하다. 선택과 집중을 해서 될성부른 기업에 지원을 집중하고 리베이트 관련 기준을 죄는 게 취지에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