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뚝'들의 B2B 진군 [2]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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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굴뚝들의 B2B 진군에는 나름대로 필요성과 합리성이 있다.

하지만 숫자가 우후죽순처럼 늘어난다고 해서 B2B 거래가 본궤도에 진입했다고 보면 오산이다. 전자상거래 연구조합의 조사에 따르면 이미 국내에는 2백여 개의 B2B 사이트가 개설되어 있다.

하지만 이중 거래가 발생하는 사이트는 40여 개에 불과한 실정이다. 이중 마켓플레이스로서 수익을 내거나, 오프라인 거래와 경쟁을 할 만한 볼륨을 가진 마켓플레이스는 전무하다.

e마켓플레이스가 말 그대로 거래를 위한 시장터로서의 역할보다는 단순히 기업들의 마케팅 툴(tool)이나 홍보 역할을 하는 사이트로서 존재하는 상황인 셈이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고까지 표현되던 B2B가 이렇게 맥을 못 추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e마켓플레이스 업체들의 준비부족을 들 수 있다. 간단한 생활용품을 파는 B2C 사이트 경우에도 구매부터 결제, 배송, 분류 등 여러 가지 관리가 필요하다.

산업에 따라 수천 개에서 수만 개의 부품이 거래되는 B2B 사이트의 경우에는 더 정밀한 관리 시스템이 필요하다. 부품이나 제품 조달, 고객확보 등 사전준비 없이 물건 몇 개 갖다놓고 손님을 기다리는 식으로는 B2B 거래가 성립될 수 없다. 상품을 보고 고객이 찾아오는 B2C와는 반대로 구매력(buying power)이 큰 B2B의 경우 고객을 확보해 놓고 그 고객이 요구하는 제품을 공급하는 방식으로 업무가 진행되어야 한다.

B2B 거래에서 제품의 주요 공급원인 부품업체들의 영세성도 문제다.

대기업에서 컨소시엄 형태로 B2B 마켓플레이스를 열어도 실제 부품을 공급하는 업체들의 경우 사업장 내에 온라인화나 디지털화가 거의 이루어져 있지 않은 상태다. B2B가 성립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인 전자문서교환(EDI)이나 전사적 자원관리(ERP)도 이루어져 있지 않은 중소기업들을 상대로 B2B를 하겠다는 것 자체가 무리한 발상이다.

산업자원부도 이런 현실은 감안 올해부터 ‘1만 개 중소기업의 IT화 대책’이라는 프로젝트를 진행중이다. 90만 개의 중소기업 중 20인 이상의 직원을 가진 8만 개 기업을 대상으로 매년 1만 개씩 ERP시스템을 구축하겠다는 계획이다.

산업자원부 전자상거래 지원과의 권평오 과장은 “ERP가 돼야 SCM(공급망 관리)이 있을 수 있고, SCM이 이루어져야 B2B e마켓플레이스가 성립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ERP도 안된 상태에서 e마켓플레이스만 열어놓는 것은 우물에서 숭늉 찾는 격인 셈이다.

대부분의 업체들이 충분한 자본금이 없이 일단 시작하고 보는 것도 문제다. 최소 2∼3년간은 수익이 없을 가능성이 많다. 그럼에도 B2B의 추세를 막을 수 없다면 충분한 자본금을 준비해 장기적으로 대응해 나가야 한다.

최근에는 대기업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자본금 규모가 상당히 커지고 있긴 하지만 여전히 기업들이 B2B 마켓플레이스를 장기적 투자로 보기보다는 당장에 이익을 가져다줄 요술 방망이로 보는 경향이 많다.

구본룡 온앤오프 회장은 “굳이 전산화가 안되더라도 기업을 경영할 수는 있다. 하지만 지금 어느 기업이라도 전산화가 필요한 것이라는 데 동의한다. 또 거기에 투자한다. B2B도 마찬가지다. 언젠가 B2B도 기업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수단이 될 것이고 그때를 대비해 장기적인 투자가 필요하다”면서 B2B 사업을 경영합리화의 한 부분으로 봐달라고 말했다.

한국적 기업문화와 제도도 B2B의 발전을 막고 있다. 여전히 커미션이 오고가는 한국의 기업문화에서 투명해질 수밖에 없는 온라인 거래가 설 자리는 좁다. 이 부분에서는 특히 CEO들의 결단이 필요하다. 또 각종 금융제도나 세제상의 보완책도 필요하다.

‘거래’가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금융부분의 지원과 보완이 필수적이다. 오프라인의 금융제도로는 온라인의 거래를 활성화할 수 없다. 다행히 정부에서는 이미 지난 1월부터 ‘디지털 세금계산서’를 인정하기로 했고, 한국은행과 시중의 16개 은행은 기업간 거래의 대부분이 어음으로 결제되는 한국적 상황에 맞는 전자결제 시스템에 대한 연구를 2월부터 시작했다. 10월에 연구결과가 나오면 앞으로 B2B거래에 획기적인 전기가 될 수도 있다.

이외에도 기존 구매·판매조직인 오프라인과의 갈등도 있다. 삼성물산 일반화학부문에서 운영하는 아이켐넷닷컴(www.ichem net.com)과 오프라인 조직이 같은 제품에 대한 가격차이를 두고 갈등을 겪고 있다고 업계 관계자는 전했다.

또 전자업종의 경우 기존 대형 유통조직이 워낙 견고해 전자상거래가 오프라인 유통의 한 부분으로 되는 경우도 있다. 이럴 경우 경비절감이나 유통단계 축소라는 B2B 본래의 목적과는 정반대의 효과를 낼 수 있다.

이처럼 많은 장애물이 있지만 대세가 B2B로 간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 인터넷관련 조사 전문기관인 포레스터리서치는 2000년 미국의 B2B 전자상거래 규모는 4천 60억 달러에 불과하지만 2004년에는 현재의 6배인 2조6천9백60억 달러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2년 뒤인 2003년에는 전자상거래 규모가 지금의 6배인 3조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화학전문 e마켓플레이스의 이강훈 대표는 “지금 당장은 B2B 전자상거래가 미미하지만 우리나라도 2∼3년 후에는 기업들이 어떤 형태로는 e마켓플레이스를 통해 거래하게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는 또 “당장 돈이 안되는 것을 뻔히 아는 대기업들이 앞다투어 단독 혹은 컨소시엄으로 B2B시장에 참여하는 것은 시장을 선점하자는 의도”라고 설명했다. 장사에 밝은 대기업들이 앞다투어 참여하는 것만 봐도 앞으로 시장 전망은 어둡지 않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전망이 밝다고 그냥 앉아서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 것은 아니다. 이제까지 B2B e마켓플레이스의 중요 관심사가 ‘어떻게 거래를 원활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할까’라는 기술적 문제였다면 이제 ‘어떻게 거래가 많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할까’라는 관리적, 경영적 문제에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아무리 좋은 거래 시스템을 가졌어도 거래가 일어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또 대기업을 포함한 기존의 e마켓플레이스 업체들도 다분히 대외 과시용적인 사업계획안을 발표할 것이 아니라 정말 업체들의 현실과 필요를 반영하는 B2B사업을 추진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굴뚝들은 21세기에도 19세기 방식으로 장사를 하는 상황에 몰릴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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