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대전 베르됭 악몽에 방어망 주창 육군장관 마지노 이름 따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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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육군 장관 앙드레 마지노(Andre Maginot, 1877~1932)-. 마지노 요새는 그의 이름을 땄다. 그의 활약과 집념 덕분이다. 그는 공무원 시험을 통해 정계에 입문했다. 하원의원(36세)이 된 다음해 1차대전이 터졌다. 하사관으로 자원입대했다. 베르됭 전투에서 다리에 중상을 입었다. 전후 하원에 복귀한다. 세 차례 육군 장관을 지냈다. 베르됭에 그의 동상이 있다.

 베르됭 경험은 그를 방어망 구축의 주창자로 만들었다. 베르됭은 인간 도살장(독일군 33만, 프랑스군 30만 명 전사)이었다. 마지노는 대규모 방어선의 장점을 이렇게 파악했다. ▷독일 기습공격을 국경선에서 저지 ▷그 사이 2~3주 동안 군대 동원 ▷탈환한 알자스-로렌의 산업 보호 ▷인구 열세(독일 7000만, 프랑스 3900만 명)를 방어로 보완한다.

 1929년 마지노는 요새 구축안을 의회에 상정했다. 90%의 압도적 지지를 끌어냈다. 예산은 5년간 29억 프랑(지금 가치 17억 유로). 당시 프랑스 재정으론 버거웠다. 그 예산 부담은 전차부대 육성, 공군 강화에 차질을 줬다. 32년부터 공사에 들어갔다. 그는 그해 숨졌다(55세). 마지노선의 완성(38, 39년)을 보지 못한다.


히틀러 낫질작전이 프랑스 허 찔렀다
유인과 기만책에 마지노선 무용지물

지헬슈니트(Sichelschnitt, 낫질)-. 독일군의 낫질작전은 기발함과 전격전이다. 독일의 프랑스 진격 방향은 역사적으로 세 가지다. ① 벨기에 북쪽 평야. 1차대전 슐리펜 공격 노선이다. ② 벨기에 남쪽 아르덴(Ardennes) 삼림 지역. ③ 프랑스와 맞닿은 알자스-로렌 지방. 이곳에 마지노선이 집중 쳐져 있다.

 독일군은 전선 세 곳에 세 개의 집단군을 포진시켰다. 루트 ①쪽 부대가 선제 공격에 나섰다(1940년 5월 10일). 프랑스·영국군 지휘부는 슐리펜 계획의 재연으로 판단했다. 그리고 대규모 부대를 그곳으로 이동시켰다. 히틀러의 유인책에 말렸다. 독일군은 루트 ③의 마지노선을 회피했다. 마지노선을 공격하는 듯한 제스처만 썼다. 낫질의 기만책이다. 마지노선은 격리됐다.

 낫질의 진짜 공격은 사흘 뒤 시작됐다. 루트 ②의 울창한 아르덴 숲이 주공 방향이었다. 프랑스가 전차의 통과 불능 지형으로 판정한 지역이다. 방어 진지는 취약했다. 독일의 주력부대는 프랑스의 허(虛)를 찔렀다. 천재적 지휘관인 구데리안(H. Guderian), 롬멜이 앞장섰다. 구데리안은 전차의 단독작전 개념을 만들었다. 그 무렵 프랑스의 통상적 육군 전력은 독일보다 우위였다. 하지만 프랑스는 전차를 보조 병기로 제한했다. 독일 전차 부대는 아르덴 숲을 이틀 만에 돌파했다. 이어 프랑스 영토에 진입했다. 프랑스·영국군의 주력은 양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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