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아이] 첸쉐썬의 질문에 답해 보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42면


최형규
베이징 총국장

중국 과학계에 ‘첸쉐썬(錢學森)의 질문’이라는 게 있다. 중국 우주항공·로켓의 아버지라 불리는 천이 2005년(당시 94세) 자신을 찾은 원자바오(溫家寶) 총리에게 던진 화두다.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해야 중국이 강국이 될 수 있다는 설명과 함께다.

 질문은 간단하다. 즉 “우리는 왜 걸출한 (과학)인재를 배출하지 못하는가”이다. 총리는 노(老)과학자의 이 화두를 들고 중국 국내외 과학자들을 두루 만났다. 모두 기초과학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그래서 나온 게 중국 주요 대학에 개설된 ‘기초과학영재발굴 과정’이다. 현재 베이징(北京)·칭화(淸華)대 등 중국 20개 대학이 이 과정을 운용하고 있다. 중국이 과학강국을 위해 시행하는 수백 개의 정책 중 하나지만 이 하나의 정책을 위해 총리는 10여 개월 동안 고민해야 했다. 물론 중국은 아직도 이 질문에 대한 다양한 답을 연구 중이다. 그러나 첸은 모든 답안에 전제조건 하나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리더가 먼저라는 거다.

 1930년대 칼텍과 MIT에 유학한 첸은 미국이 인정하는 세계 최고의 로켓 전문가였다. 55년 그는 미국의 최고 로켓과 우주항공 연구소 중 하나였던 칼텍 초음속 실험실장을 맡고 있었다. 그때 그는 가난하고 힘없는 조국에 힘을 보태고 싶었다. 사직서를 낸 다음 날 그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요원들에게 감금됐다. 이유를 묻는 첸에게 한 요원은 “당신의 힘은 5개 사단병력과 맞먹는다. 살아 돌아가기 힘들 것”이라고 했다. 이 사실을 보고 받은 저우언라이(周恩來) 당시 총리는 한국전쟁 당시 붙잡은 미군의 최고위급 포로 11명 모두를 미국에 넘기는 조건으로 첸의 귀국을 보장받았다. 과학자의 조국애와 국가의 과학에 대한 경외(敬畏)가 만들어낸 드라마다.

 56년 미국에서 돌아온 첸 박사가 마오쩌둥(毛澤東) 주석과 저우 총리를 만났다.

 마오: 국가 경제건설과 미사일 제조·지도를 부탁합니다.

 첸: 세상에 불가능한 일은 없습니다.

 마오: 언라이(저우 총리), 우리 로켓발사기지 준비는요.

 저우: 기지 장소는 정했고 연구 인력은 선발 중입니다.

 마오: 모든 걸 첸 동지에게 맡기세요. 믿어야 해요.(이상 첸쉐썬 수기 중)

 2009년 숨을 거두기 얼마 전 과학원로들이 첸을 문병했다.

 “조국이 우주항공, 로켓 강국이 된 건 모두 박사님 덕입니다.”

 “(고개를 저으며) 영도자의 (과학에 대한) 사랑과 믿음이 없었다면….”

 중국이 곧 네 번째 유인우주선 선저우(神舟) 9호를 쏜다. 아직 로켓 하나 우주궤도에 올려놓지 못한 우리는 그저 부러울 뿐이다. 그러나 오늘만은 그 부러움을 잠시 접어두고 ‘첸쉐썬의 질문’에 각자 답을 생각해 보자. 특히 우리 정치권 말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