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웃은 유럽인들 유로 2012 응원전에 나선 유럽 각국 축구팬들의 모습. 왼쪽부터 뺨에 작은 국기를 그린 그리스 여성, 얼굴 반쪽을 나비 모양의 국기로 그려 넣은 독일 여성, 얼굴 전체를 국기 모양으로 칠한 스페인 남성. [AP·로이터=뉴시스]그리스와 스페인. 유로존 위기의 핵심 당사자인 두 국가의 상황은 점점 안 좋아지고 있다. 그리스는 2차 총선(17일)의 판도가 안갯속이다. 금융 붕괴와 유로화 탈퇴 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높아지고 있다. 지난 10일 1000억 유로(약 146조원)의 구제금융을 신청한 스페인은 추가 구제금융을 신청할 수밖에 없을 거라는 전망이 나온다. 두 나라의 엄혹한 현실을 유일하게 위로해 주는 건 축구다.
폴란드와 우크라이나에서는 지난 10일부터 유럽 국가들의 축구대항전인 ‘유럽축구선수권대회(유로 2012)’가 열리고 있다. 그리스와 스페인 언론은 연일 자국 대표팀의 경기 결과와 일정, 스타 선수의 부진 등 자세한 소식을 전하고 있다. 그만큼 큰 기대를 걸고 있는 것이다. 그리스는 유로 2004, 스페인은 유로 2008 우승국이다.
1무1패로 A조 최하위에 처져 있는 그리스는 정상급 전력은 아니지만 2004년 우승도 이변으로 여겨진 만큼 또 한 번 기적을 바라고 있다. 스페인은 세계랭킹 1위의 저력으로 우승을 자신하고 있다. 두 나라 사람들 모두 어려운 시기에 대표팀이 다시 한 번 옛 영광을 재현해 주길 기대하는 것이다.
선수들도 국민의 기대를 잘 알고 있다. 그리스의 주전 공격수 게오르기오스 사마라스가 대회에 참가하기 전 밝힌 각오는 나라를 구하기 위해 전쟁터로 향하는 군인처럼 비장했다. 그는 “그리스인이 대표팀의 선전을 통해 고통스러운 일상에서 탈출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 스페인의 사비 에르난데스는 자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축구가 좋은 치료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모든 국민이 절망하고 있지만 대표팀이 좋은 성적을 거둔다면 용기를 심어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유로 2012 우승컵이 실업률을 낮춰 줄 순 없다. 구제금용을 없던 일로 해 주지도 못한다. 스페인 대표팀의 비센테 델보스케 감독은 “우리가 좋은 성적을 거둔다고 해서 경제위기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고 꼬집었다. 지나친 희망과 기대가 더 큰 절망을 가져올 수도 있다.
그러나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심리적인 효과’는 분명 있다. 캐나다 오타와대 놈 오라일리(스포츠산업) 교수는 “좋은 성적은 단지 국가적 자긍심만 키워 주는 게 아니다”며 “심리적으로 경제위기 극복에 긍정적인 효과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설명했다. 위기를 해결해 줄 순 없지만 절망에 빠진 국민을 위로하고 시름을 덜게 만들 순 있다는 설명이다. 가까운 예로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는 칠레가 화끈한 공격축구를 선보이며 지진 피해로 고통받는 국민을 위로해 줬다.
◆‘유럽 한·일전’에서 승리한 독일=스페인과 그리스의 절박함은 국가가 처한 위기 상황에서 나왔다. 그만큼은 아니지만 승리가 절박한 또 다른 이유들이 있다. 역사적으로 앙숙관계가 된 나라들끼리의 대결이다. 유로 2012를 보는 또 하나의 재미다.
대표적인 것이 네덜란드와 독일의 경기다. 두 나라의 경기는 ‘유럽의 한·일전’으로 불린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이 탱크를 앞세우고 중립을 선언한 네덜란드를 침공해 두 나라는 앙숙이 됐다. 14일 열린 경기에선 독일이 2-1로 이겼다. A조에서는 러시아가 폴란드·체코와 한데 묶였는데 사이가 좋지 않다. 소련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폴란드를 위성국가로 삼았으며 ‘프라하의 봄’ 때는 체코를 탱크로 짓밟았다.
◆유로(Euro) 2012=유럽축구연맹(UEFA) 주관으로 4년마다 한 번씩 열리는 유럽의 축구 국가대항전. 유럽에서는 UEFA 챔피언스리그와 더불어 월드컵보다 더 인기가 좋다. 올해는 폴란드·우크라이나 공동 개최로 10일부터 진행 중이다. 결승전은 다음 달 2일 키예프(우크라이나)에서 열린다. 현재는 16개 팀이 본선에 참가하지만 2016년부터는 24개 팀으로 확대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