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스볼파노라마] 떠나는 심, 돌아오는 심

중앙일보

입력

지난 9일 심정수와 심재학의 맞트레이드가 전격 발표됐다. 양팀은 물론 팬들이나 야구관계자 모두 화들짝 놀랄만한 빅카드였다. 정작 통보를 받은 본인들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심정수는 '예견했다'는 듯 시원섭섭함 속에서도 담담함을 잃지 않은데 반해 심재학은 아쉬움이 가득한 모습이었다.

94년 두산의 전신인 OB에 입단해 7년간 팀의 간판으로 활약했던 심정수에 비해 심재학이 1년간의 짧은 현대시절에 대한 강한 향수를 느끼는 것은 비단 팀의 우승 때문만은 아니다.

충암고 3학년 때부터 국가대표로 줄곧 활약했고 고려대를 거쳐 95년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LG에 입단했던 심재학은 초반 적응 실패로 2군을 전전하다 96년부터 3년간 중심타선에 나섰지만 기대에 미치지 못한 채 99년 무너진 팀의 마운드를 메우기 위해 투수로 보직을 바꿨다.

선택의 여지가 없는 투수전직이었지만 99시즌은 마운드에서 뭇매를 얻어맞은 기억밖에 없었다. 그리고 시즌이 끝나자 LG는 그를 트레이드 했다. 투타 모두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다는 입장이었다.

자신감을 잃고 현대 유니폼을 입은 심재학은 강한 어깨 하나에 의지한 채 방망이를 다시 잡았고, 유전 경험이 있는 선수들이 많아 분위기 적응도 쉬웠다. 동료와의 호흡 속에 전폭적인(현대사태 이전) 구단의 지원은 새로운 의욕으로 그를 사로잡았고 이전의 배트스피드를 회복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2000시즌 현대의 초반독주는 심재학의 한방에 힘입은 바가 컸고 그 여세로 우승까지 거머쥘 수 있었다. 처음 맛보는 우승의 감격은 자신의 재기와 함께 이뤄졌고 그간의 부진과 집의 화재 등 온갖 역경을 극복한 지난 1년이었기에 새로운 야구인생을 열어준 현대는 시간에 비해 정이 깊었다.

반면 심정수는 동대문상고(현 청원정보고) 졸업 후 OB에 입단해 초반부터 특유의 펀치력으로 인기를 모았다. 소총수 부대였던 팀타선은 대포부대로 탈바꿈하기 시작했고 이도형의 가세와 김상호의 이적으로 95년 우승을 일궈냈다.

장수용병 우즈와 괴력의 김동주가 입단하며 두산은 '우동수 트리오'로 무장됐다. '허벅지 트리오'로도 불린 이들의 펀치력에 상대 투수와 감독들은 애간장을 태웠고, 심정수는 피해갈 수 없는 마지막 봉우리였다. 작년 LG와의 플레이오프에선 결정적인 홈런포를 거푸 쏘아 올려 포스트시즌의 사나이로 자리매김 했다.

하지만 커미셔너 구단인 두산에서 선수협의회를 주도해온 강경파 심정수를 곱게 볼리 없었다. 평소 의리와 소신있는 행동으로 동료들의 신망이 두터웠지만 팀과는 조금씩 금이 가고 있었고, 자유계약선수 파문 이후 메이저리그 사무국으로부터 신분조회까지 받기도 했지만 결과는 현대행으로 끝이 나고 말았다.

아무 조건없이(?) 양선수를 맞바꾼 두 구단의 성패는 연말에야 알 수 있겠지만 그간의 정을 떨치고 서운함을 간직한 채 가방을 든 두 선수의 활약여부는 올 시즌 주목해야할 또 하나의 흥미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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