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내쫓기는 애연가

중앙일보

입력

뉴욕은 흡연자들에게 있어 지옥이다.

담뱃값이 엄청나게 비싸고 실내에서 담배를 피울 수 있는 곳도 적다.

여기다 흡연자를 바라보는 시선도 험악하다.

이 때문에 문화와 예술의 도시 뉴욕에서 폼 한번 잡아보려고 담배를 멋지게 빼어물다 망신당하는 사람이 한두 명이 아니다.

뉴욕에서 담배 한 갑의 가격은 보통 4.75~5.50달러(약 6천5백~7천원). 또 2인 이상 사무실과 모든 식당.상점에서는 무조건 금연이다.

담배를 피울 수 있는 실내 공간은 식당 안의 경우 손님들이 앉는 홀에서 2m 이상 떨어진 곳에 위치한 부속 바나 선술집 뿐이다.

그런데 뉴욕시 의회가 최근 거리와 상관없이 식당에 부속된 바에서는 무조건 금연을 해야 한다는 법안을 준비 중이다.

이 법안이 입안되면 뉴욕에서는 사실상 실내에서 흡연할 수 있는 곳이 없어지는 셈이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자 스타박스 등의 커피숍에서 상담을 하던 사람들이 대화도중 담배 한 대를 물고 밖으로 나가 담배를 피우는 모습은 흔한 일이 돼 버렸다.

대형 오피스빌딩 현관 마당에도 담배를 피우기 위해 밖으로 나온 직장인들이 가득하다.

뉴욕의 최고층 빌딩인 월드 트레이드 센터나 엠파이어 스테이트빌딩 같은 곳에서는 흡연자들이 담배 한대를 피우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타고 5분 이상 내려오는 여행(□)을 해야 한다.

왕복 10분, 담배 피우는 시간 5분(어렵사리 내려온 만큼 두대 필 경우는 10분 소요) 등 담배 한대 피우는데 걸리는 시간이 15~20분이고 보니 이들에 대한 상관의 시선이 고울 리 만무하다. 델리나 그로서리 등 담배 판매업소들의 업주도 늘 노이로제다. 미성년자에게 담배를 판 것이 적발되면 벌금이 엄청나기 때문이다.

뉴욕시에서 18세 미만 미성년자에게 담배를 팔다 적발되면 처음에는 2천달러의 벌금을 내야 하고 두번째는 1만달러, 세번째는 면허취소다. 함정수사를 통해 적발되면 벌금이 워낙 비싸다 보니 한번쯤은 경고를 준다고 한다.

한번 적발된 경험이 있는 업소에 담배 판매는 곧 애물단지다.

그러나 사람들이 담배만 사러 가게를 방문하는 것이 아니고 다른 물건을 한꺼번에 사기 위해 방문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업주측은 매상관리 차원에서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담배를 팔고 있다.

뉴욕시는 18세 이상에게만 담배 판매를 허용하고 있지만 규정은 28세까지 신분증 제시를 요구해도 위법이 아닌 것으로 명시하고 있다. 25세 된 사람이 담배를 산 후 왜 나한테 신분증 제시요구를 하지 않았느냐고 하면 업주측은 꼼짝없이 당한다. 자유와 예술의 도시 뉴욕도 흡연자에겐 지옥인 것이다.

그렇지만 뉴욕의 담배판매는 줄지 않고 있다. 흡연자들은 고비용, 타인에 대한 불편 야기, 스스로의 불편함 등 정말로 많은 제약이 따르지만 담배를 피울 공간만 있다면 담배를 버리지 않겠다는 듯 악착같이 피워댄다. 뉴욕시의 강력한 금연정책처럼 뉴욕 흡연자들의 담배에 대한 집착도 악착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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