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점 몰아내는 게 물류비 줄이는 지름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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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류비 절감 없이 국제 경쟁력도 없습니다.” 인터넷 쇼핑몰이 주요 사업인 IT기업 사장의 첫 마디는 의외로 구경제 냄새가 물씬 풍기는 물류(物流)였다. 하지만 김홍식(47) 한솔CSN 사장은 물류 합리화야말로 신경제의 사활이 걸린 문제라고 단언했다. “작년 한 해 기업 매출액의 12.5%, 국내 총생산의 17.5%가 물류비로 나갔습니다. 선진국의 2배 수준입니다.”

또 작년 한 해 우리나라 상장기업의 전체 순이익이 약 10조원인 반면 교통혼잡으로 길에 뿌려진 돈이 약 17조원이라는 통계도 있다.

물류비 부담이 이렇게 크면 아무리 물건을 싸게 만들어도 국제 경쟁력이 없다.

물류에 관한 그의 ‘강의’는 구체적인 수치와 예를 들어가며 계속된다. “우리나라의 차량증가율은 연간 20%에 달합니다. 하지만 도로 증가율은 1%도 안되죠. 도로증설로는 물류대란을 막을 수 없습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차량통행을 줄이는 것인데 인터넷이나 홈쇼핑을 통한 전자상거래를 통해 물건들만 도로를 오가도록 하는 것이 유일한 대안이라는 주장이다. 출퇴근하는 사람이나 나들이 가는 사람들은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물건사러 백화점이나 쇼핑센터에 가는 사람들이 없도록 하자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하지만 인터넷 쇼핑몰만 늘어난다고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물류가 합리화되지 않으면 오히려 도로가 더 복잡해질 수 있다. “미국 LA근교에 있는 롱비치에서 부산까지 오는 컨테이너 운송비보다 부산에서 서울로 가는 운송비가 더 비쌉니다. 한국은 돌아올 때 빈 차로 올 운임까지 왕복으로 받기 때문이죠.”

주먹구구식 물류 때문에 비용도 많이 들고 도로도 더 혼잡해진다.

물류를 정보산업으로 보지 않고 그저 운송업 정도로 보기 때문이다. 김사장은 이미 오래 전부터 물류의 중요성을 간파하고 세계 최초로 물류 사이트를 개설했다. 빈 트럭이나 창고에 관한 정보를 종합해 필요한 사람에게 실시간으로 제공하는 사이트다.

전자상거래 업체 사장인 그가 물류를 강조하는 것은 전자상거래의 핵심이 바로 물류의 경쟁력이기 때문이다. 사이트 하나 만드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다. 돈도 얼마 들지 않는다. 하지만 전국을 대상으로 제시간에 정확하게 물건을 전달할 수 있으려면 수많은 노하우와 인프라가 필요하다. “저희는 지정된 기간에서 하루 늦으면 배송비를 일절 받지 않습니다. 3일 늦으면 4백% 보상해 줍니다.” 물류에 대한 자신감과 중요성을 함축하는 말이다.

인터넷 업체 사장으로 마흔일곱은 적지 않은 나이다. 그럼에도 전자상거래의 핵심에 대해 이해하고 있는 것은 일찍이 삼성그룹의 경영기획실에서 근무한 덕이다. 그룹 경영기획실의 특성상 해외 트렌드나 미래의 사업환경 변화에 민감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또 그룹회장을 수행하면서 밤낮으로 공부도 많이 했다.

앞으로 맞벌이가 더 활발해지고, 주 5일 근무제가 실시되면 전자상거래에 대한 수요도 더 늘어날 것으로 김사장은 보고 있다. 지금은 e커머스 중심이지만 머지않아 T(tele)커머스로 중심이 옮겨갈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그때를 대비해 홈쇼핑 채널도 준비중이다. 이미 60여 개의 업체로 컨소시엄구성을 마쳤다.

특이한 것은 그 중 40개 업체가 벤처기업이라는 점이다. 자신은 대기업 사장이지만 ‘벤처기업이야말로 한국경제의 희망’이라고 말할 정도로 벤처 지지론자다.

한솔CSN도 벤처식으로 운영한다고 했다. 11명의 소사장을 두고 그들에게 인사, 예산, 영업에 관한 전권을 줬다. 초과 이익이 나면 30%는 해당팀에 준다. “벤처기업이 한국경제의 희망이라고 다들 말하지만 벤처기업의 판로를 개척해 주는 업체가 없습니다. 한솔CSN이 그 역할을 맡으려는 겁니다.” 벤처기업을 위주로 컨소시엄을 구성한 게 그저 구색맞추기는 아니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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