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부동산신탁 부도… 부동산 경기에 찬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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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부동산신탁 부도에 따른 직접적인 피해액은 1조7천억원으로 추산된다.

그러나 시공사만 바꾸면 되는 건설회사의 부도와 달리 신탁회사 부도는 사업시행자가 없어지는 셈이어서 공사지연은 물론 소송사태 등 복잡한 절차를 모두 감안할 경우 실제 손실규모는 2조원이 넘을 전망이다.

특히 공기업이나 마찬가지인 한부신의 부도는 정부정책의 신뢰도를 떨어뜨리고, 부동산 경기 위축 등 실물경제에 미치는 악영향까지 고려하면 보이지 않는 피해는 더 커질 수밖에 없다.

◇ 소비자 보호장치 없는 피해가 문제=지난해 말 현재 이 회사가 시행하고 있는 아파트 사업은 29곳 1만9천3백15가구로 이중 1만2천3백14가구가 분양됐다.

대부분 대한주택보증에서 분양보증을 받았기 때문에 집을 날릴 걱정은 없지만 일시적인 공사중단으로 입주지연이 불가피하다.

분양계약자들은 입주가 늦춰지면 지체보상금을 받아낼 수 있지만 이사계획 등과 맞물려 있어 간접적인 피해도 적지 않다.

특히 고양시 탄현 큰마을아파트처럼 한부신이 시공사에 공사비를 주지 못해 땅이 가압류된 경우라면 입주한 뒤에도 재산권 행사를 하지 못한다.

문제는 소비자가 보호받을 제도적 장치가 없는 주상복합아파트.상가.오피스텔 계약자들. 47곳 3천6백여명의 분양계약자들이 낸 분양대금 2천5백42억원이 고스란히 묶이게 된다.

분당 테마폴리스만 해도 1천7백70명의 세입자가 1천3백억원의 임대보증금을 냈지만 은행들이 1순위 근저당 설정을 해놓은 데다 팔리지도 않아 피해가 클 것으로 우려된다.

게다가 삼성중공업이 테마폴리스를 경매에 넘기면 영세상인들은 고스란히 보증금을 떼이게 된다.

부동산써브 김정렬 사장은 "피해자들이 대표자 모임을 만들어 은행.회사와 협의하되 투입비용.공정률.추가부담금 등을 정밀심사해 공사를 계속할 수 있을지 따져봐야 한다" 고 말했다.

건설.부동산 업계의 피해도 크다. 전국 65개 사업장에서 공사 중인 47개 건설사와 7백51개 하청업체들의 공사대금 회수가 어려워졌다.

한부신은 지난해 11월 말 현재 1조6천4백65억원 가운데 2천2백25억원을 이들 업체들에 주지 못하고 있다.

아파트 사업을 떠맡게 된 대한주택보증도 공사비 1천5백51억원을 추가로 부담해야 하기 때문에 가뜩이나 어려운 경영에 압박을 받게 됐다.

◇ 채권단도 묘안 없어=외환은행을 비롯한 한부신 채권단은 2일 오전 최종부도 직후 대책마련에 몰두했다.

채권단이 밝힌 한부신에 대한 금융권 채권규모는 6천3백44억여원. 한미은행 9백3억원, 외환은행 7백56억원을 비롯해 8개 은행의 여신이 2천1백83억원에 이르고 종금사 2천1백83억원, 기술신용보증 등 기타 금융기관이 2천17억원을 지원했다.

그러나 채권단은 이미 4천9백여억원의 무담보채권을 전액 손실처리할 각오로 출자전환 계획을 세운 상태며, 대손충당금도 충분히 쌓아 큰 충격은 없다는 입장이다.

채권규모가 가장 큰 한미은행 관계자는 "이미 떼일 것을 감안, 1백% 넘게 충당금을 적립한 상태" 라고 말했다.

종금사들도 50% 정도의 충당금을 이미 적립한 상태다.

이밖에 일부 사업장을 매각하거나 공사를 완료해 처분하면 더 얻어낼 여지도 있다는 판단이다.

그러나 한부신과 한부신이 운영하는 공사현장을 어떻게 처리할지에 대해서는 아직 구체적인 방법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규약에 따르면 해당회사가 부도나면 워크아웃이 자동 종료된다. 하지만 한부신은 워크아웃 대상이 안돼 채권단의 합의에 따라 사적(私的) 워크아웃을 진행 중이다.

따라서 채권단 협의에 의해 워크아웃을 계속 진행할 수도 있다. 그러나 채권단 관계자는 이 방안은 '탁상공론' 일 뿐이라고 전했다.

회생을 전제로 하는 법정관리도 배제하는 분위기다. 한부신의 부실이 워낙 깊고 건설사의 특성상 일단 부도가 나면 회생이 어렵기 때문이다.

외환은행 주원태 상무는 "부동산신탁사는 시장의 신뢰가 생명인데 과연 한부신이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지 의문" 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한부신은 법원에 파산신청을 내고 청산절차를 밟을 것으로 보인다.

이 경우 9백65억원의 한부신 고유자산은 파산재단으로 이관돼 빚잔치를 하게 된다.

그러나 한부신이 땅을 위탁받아 운영하는 65개 공사현장(신탁자산)은 사업장별로 다른 운명에 놓일 것이라고 채권단은 전망했다.

외환은행 관계자는 "최근 65개 사업장을 자체 분류한 결과 33곳이 이익을 내지 못한 것으로 파악됐다" 며 "이들 사업장은 매각작업을 추진할 것" 이라고 말했다.

또 나머지 수익이 기대되는 사업장은 프로젝트 파이낸싱 등 신규자금 투입을 통해 사업을 계속한다는 복안이다. 매각대금이나 사업완료 후 얻는 수익금도 빚잔치에 쓰일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한부신의 자산을 처분해 마련되는 돈은 담보를 잡고 있는 채권단이 먼저 차지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공사대금을 못 받게 된 시공사와 협력업체, 계약금 등을 떼이게 됐거나 입주가 지연되는 아파트.상가 분양계약자, 출자자, 신탁자 등은 정부가 별도의 대책을 마련해주지 않는 한 피해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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