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부동산신탁 왜 부도났나]

중앙일보

입력

한국부동산신탁의 부실은 잘못된 자금조달 구조와 주먹구구식 경영에서 비롯됐다. 여기에 건설경기 불황이 겹쳤다.

부동산신탁사는 개인.건설회사 등과 개발신탁 계약을 한 뒤 자신의 명의로 금융기관들로부터 사업비의 50% 범위에서 돈을 빌린다.

문제는 대부분이 단기자금이라는 점. 아파트.상가 등 개발사업은 3~5년이 걸리는데 신탁사들은 1년 미만의 자금을 쓴다. 따라서 분양이 예상대로 되지 않으면 자금난에 빠질 수밖에 없다.

신탁사업은 프로젝트마다 독립채산제 운영이 원칙이다. 그러나 금융기관들은 프로젝트별 대출을 꺼리면서 신탁사 명의로만 대출을 해줬다.

이 때문에 신탁사들은 부도를 막기 위해 우량 사업장의 자금을 부실 사업장에 쏟아부었고, 결국 멀쩡한 사업까지 부실해지는 악순환이 벌어졌다.

1991년 한국감정원 자회사로 문을 연 한부신도 이런 식으로 단기자금을 끌어 썼고, 외환위기 이후 이자부담이 가중되면서 영업이 빠르게 악화됐다.

99년 2백75억원, 지난해 2천여억원의 손실이 났다. 부채도 7천8백억원에 이른다.

특히 중소건설업체인 ㈜경성에 대한 불법 대출과 분당 신도시 테마폴리스상가의 사업 실패가 결정적인 타격이었다.

98년에 터진 경성 불법 대출 사건의 경우 한부신은 말뚝도 박지 않은 아파트사업에 거액을 대출하고 지급보증을 서줬다.

이 과정에서 정치권과의 유착 비리가 드러났다. 결국 경성이 부도를 내면서 한부신은 이 사업에서만 1천억원이 넘는 손실을 봤다.

분당 테마폴리스는 허술한 사업관리의 '모델 케이스' 라고 할 만하다.

주차장을 1층으로 했다가 민원에 밀려 지하로 바꾸는 등 잦은 설계변경으로 사업이 수년간 지연됐고 이 과정에서 공사비도 늘어났다.

게다가 사업위탁자였던 ㈜중일과 해태건설의 부도가 겹치면서 총 사업비 4천7백42억원 가운데 1천1백억원 가량이 묶였다.

개발신탁사업 경험이 거의 없는 한국감정원 퇴직자들이 한부신으로 자리를 옮겨 실무를 맡은 것도 환부를 키웠다.

부실을 알고도 제때 적절한 대응책을 마련하지 않은 감독당국과 채권단의 도덕적 해이도 부실을 키운 또다른 원인으로 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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