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 없는 환상만…" TV 오락프로 난기류

중앙일보

입력

"도대체 오락 프로야, '사랑의 리퀘스트' 야?" 요즘 오락 프로그램의 화두는 불우이웃돕기다. 오락 프로가 재미와 함께 감동까지 준다면 금상첨화겠지만 이들 프로는 오락의 본령인 재미를 '포기'하고 감동만 앞세우는 인상을 준다.

게다가 형식마저 매번 똑같아 이제 시청자들이 식상해할 단계까지 이르렀다. 스타들이 나서서 집을 지어주거나 돈을 모아 불우이웃을 도와준다는 천편일률적인 내용이다.

MBC의 '일요일 일요일밤에'는 3개 코너 중 2개가 불우이웃돕기다. '게릴라 콘서트' 코너는 가수가 제한된 시간 안에 직접 홍보에 나서 정해진 인원을 콘서트장에 동원하면 불우이웃을 위해 뭔가를 해준다는 내용.

매번 춥고, 힘든 스타의 모습을 강조하는 것도 똑같고 사람이 안 모일듯 하다가 결국 예상 인원을 넘었다는 사실에 스타가 눈물을 '뚝뚝' 흘리는 것도 똑 같다.

11회까지 나간 '신동엽의 러브하우스' 코너는 식당 대신 딱한 사정에 처한 가정집을 선택한 것 외에 99년에 방영된 인기코너 '신장개업'과 다를 게 하나도 없다.

KBS2 '자유선언 오늘은 토요일'은 올들어 '일요일…'의 두 코너를 혼합한 형태인 '희망의 집짓기'를 신설했다. 콘서트를 열어(게릴라 콘서트) 돈을 벌고, 그 돈으로 집을 지어주겠다(러브하우스)는 것이다.

여기다 '가족화합 대성통곡'에 미아찾기(슈퍼 TV 일요일은 즐거워)까지 도와주기 프로는 끝이 없다. SBS의 '스타!꿈의 도전' (기쁜우리 토요일)은 스타가 정해진 목표를 달성하면 불우이웃기금이 생긴다는 점에서 수년전의 포맷 그대로다.

이처럼 정해진 포맷에 맞춰 눈물을 짜내려다 보니 도움주기를 과장하는 데 초점이 맞춰진다. '게릴라 콘서트'의 경우 팬클럽이 동원되고 콘서트 하루 전날부터 홍보에 나선다는 것은 공공연히 알려진 비밀이다.

'러브하우스'는 집을 잘 고쳤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 이전에 살던 출연자의 집을 혐오스러운 공간으로 묘사하기 일쑤다. '가족화합 대성통곡' 은 아예 눈물을 전면에 내세웠다. 하지만 시청자들은 출연 가족의 사연에 감동을 받기는 커녕 맥락도 모를 그들의 가정사와 일방적인 눈물에 짜증만 날 뿐이다.

'일요일…' 제작진은 "오락프로에서 세련되게 잘 도와주면 교양과는 다른 감동을 낳는다"며 "단지 집을 고쳐주는 게 아니라 그 환경때문에 힘들어했던 사람 자체를 바꾸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러브하우스'의 경우 수천만원에 이르는 주택 개조 비용을 대부분 협찬에 의존하고 있다. 코너 끝에 언급되는 수많은 협찬사들이 결국 '봉사'를 한 셈이다.

KBS 경명철 예능국장은 "오락 프로가 '저질, 선정적'이라는 비판을 받으면 찾게 되는 소재가 바로 불우이웃돕기나 기초질서 지키기 등 건전 아이템"이라며 "그러다보니 소재가 뻔해 오락 프로그램 전체가 비슷해졌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오락도 교양도 아닌 어정쩡한 프로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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