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작가 6명의 은밀한 이야기…'아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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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스를 주제로 각기 다른 단편 소설을 발표한 여성 작가들이 30일 서울 종로의 한 카페에 모였다. 왼쪽부터 소설가 은미희·김이설·구경미·김이은·한유주·이평재. [김도훈 기자]

섹스는 존재의 내밀한 소통이다. 이 소통은 격렬해서 아찔하다. 문학도 섹스를 한다. 문학은 언어의 내밀하고 격렬한 소통이다. 문학에 섹스 장면이 자주 등장하는 이유가 다 있었던 게다. 그렇다면 아예 섹스를 테마로 삼은 문학이라면 어떨까. 그 문학은 섹스처럼 아찔할까. 아니면 다만 자극적이기만 할까.

 우리 시대 여성 작가 6명이 그 해답을 내놨다. 테마 소설집 『이브들의 아찔한 수다』(문학사상·사진)에서다. 소설가 구경미(40)·김이설(37)·김이은(39)·은미희(42)·이평재(53)·한유주(30)가 ‘섹스’를 주제로 각기 다른 단편을 썼다. 지난해 김종광 등 남성 작가 8명이 쓴 섹스 테마 소설집『남의 속도 모르면서』의 속편이다.

 30일 6명의 작가가 서울 종로의 한 카페에 모였다. 지난 몇 달간 ‘섹스’만 생각하며 소설을 썼던 여자들이다. 갓 나온 소설집을 놓고 한바탕 수다가 벌어졌다.

 ▶은미희=출판사에서 첫 섹스의 아찔한 경험을 소설에 담아달라고 했는데 도무지 생각이 나야 말이죠. 그리 황홀했던 기억도 아니고요.

 ▶김이은=저는 관음증적인 시각이 가장 걱정됐어요. ‘여성 작가의 은밀한 섹스 판타지’라는 기획 의도에만 얽매이지 말아야겠다 싶었죠. 삶의 한 단면으로서의 섹스를 그려보고 싶었어요.

 각양각색의 스토리였지만, “섹스를 주제로 소설을 쓰는 게 쉽지만은 않았다”고 작가들은 입을 모았다. 실제 소설집에서도 그런 고민의 흔적이 읽혔다. 몇몇 작품은 섹스가 전면적인 주제로 나서기를 주저하는 모양새다. 예컨대 ‘팔월의 눈’(구경미)은 위로의 섹스가 효과적으로 배치돼 있지만, 공장 노동자들의 이야기가 서사의 중심이다.

 ▶구경미=결혼도 안 한 제가 섹스 테마소설을 쓴다는 게 부담스러웠어요. 지금은 사귀는 사람도 없고…. (섹스) 경험도 까마득한 예전이라….

 아무래도 섹스라는 테마는 적잖은 부담이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 부담을 재료 삼아 작품을 더 탄탄하게 다졌다.

 이 소설집에는 유부녀와 섹스를 하고 돈을 뜯어내는 고교생(김이설의 ‘세트 플레이’), 사진 작가의 어긋난 사랑과 고통의 섹스(은미희의 ‘통증’), 조선 시대 양반집 여식과 노비의 비극적 사랑 (김이은의 ‘어쩔까나’) 등 짜릿하나 아릿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섹스에 대한 세밀한 묘사를 포기하면서도 섹스의 문학적 기운으로 충만한 ‘제목 따위는 생각나지 않아’(한유주)도 이 소설집이 거둔 수확이다.

 이 소설들을 한국 성애(性愛) 문학이 당도한 새로운 경지라고 부른다면 호들갑일까. ‘크로이처 소나타’(이평재)에 이르면, 괜한 호들갑도 아닌 듯싶다. 이 소설은 베토벤 소나타를 서사의 중심으로 끌어왔는데, 섹스의 리듬과 문장의 리듬이 하나로 포개진 흔치 않은 사례다. 이평재는 “섹스를 서사로만 쓰면 포르노가 된다. 섹스의 자연스런 감성을 그리려고 음악을 끌어왔다”고 했다.

 섹스는 살과 살의 속삭임이다. 이 소설집은 그 살들의 이야기다. 즐거운 섹스마냥 아찔하고 내밀하게 읽힐 것이다. 소설도 섹스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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