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자와 유키찌 '문명론 개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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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볼테르' 후쿠자와 유키찌(福澤諭吉,1835-1901) 를 아는가.만엔짜리 지폐에 초상화가 실려 있는 사람.

메이지 초기의 문명개화를 상징하는 계몽사상가. 관계 진출을 고사,재야 지식인으로 남았던 그는 게이오 대학(慶應義塾) 설립, 베스트셀러 집필과 번역, 출판사 경영,『시사신보(時事新報) 』창간 등 활동을 펼친 ‘근대 일본의 아버지’였다.

아울러 그는 한국 근대사 ·사상사와도 긴밀하게 얽혀 있다. 갑신정변(1884) 의 주역 김옥균 ·박영효, 그리고 유길준 ·윤치호 같은 사상가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만년에는『시사신보』를 통해,한반도 정책에 훈수를 두기도 했다. 전통 유학에서 란가쿠(蘭學:네덜란드 학문) 로, 다시 요오가쿠(洋學:英學) 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그는 ‘한 몸으로 두 삶을 사는’ 삶을 살았다.

그의 뇌리 속에는,『논어』와 죤 스튜어트 밀의 『여성의 예속』(1869) 이 동시에 들어 있었던 셈이다.

메이지 유신 전에 이미 세 차례의 서양행(洋行) 을 통해서,그는 서구 문명과 발전을 볼 수 있었다.그 체험은『만국공법(萬國公法) 과 『서양사정(西洋事情) 』을 낳았다.

그는 이어 『학문을 권함(學問のすすめ) 』(17편,1872년 2월∼1876년 11월) 을 내놓았고,

“하늘은 사람 위에 사람을 만들지 않고, 사람 밑에 사람을 만들지 않는다”는 첫 구절은 일본사상사에 등장한 근대적 자아선언이었다.

이어 나온 것이 바로 근대 일본의 고전으로 꼽히는『文明論之槪略』(1875) 이다.

그에 의하면 문명론이란 사람의 정신의 발달에 관한 논의다.주요내용은 가치판단의 상대주의, 그리고 실용주의적인 관점을 피력한다.

이어 문명의 본질과 실태(중국,일본,서양) 에 대한 설명(제2-7장) , '서양 문명의 유래' (제8장) , 그리고 ‘일본 문명의 유래' (제9장) .

마지막 ‘자국(自國) 의 독립을 논함’(제10장) 을 논한다.동양 근대의 지식인의 전형적인 고민이 녹아있는 이책은 ‘문명’과 ‘독립’이라는 딜레마에 주목하고 있다.

그것을 통해 그는 ‘근대’의 본질을 꿰뚫어 보았다. 보편적인 ‘문명’의 논리는 정복과 지배를 정당화할 수 있다. (그리고 실제로 근현대 일본은 그러했다.) 그 끝간데 이르면, 어느새 자국의 독립이 부정될 수도 있다는 것. 거기서 긴장과 갈등은 고조된다.

제국주의와 식민지의 관계를 생각해보라. 개량주의와 실력양성론의 한계 역시 거기서 드러난다.마침내 그는 이렇게 말한다.

“목적을 정하고 문명으로 나아가는 길 뿐이다.…그 목적이란 무엇인가.…독립을 보전하는 것이다.그 독립을 보전하는 법은 문명 외에 달리 없다.”

일본의 독립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서양의 문명을 배워야 한다는 것.그래서 ‘문명’과 ‘독립’은 마치 뫼비우스의 띠처럼 이어지고 있다.보편적인 진리,문명과 (후발) 개별국가의 ‘독립’사이의 복합 구조는 ‘세계화’가 기정사실로 되고 있는 오늘날에도,여전히 시사하는 바 크다.

진리의 보편성에 철저한 나머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학문의 제국주의에 복무할 수도 있다는 딜렘마 말이다.

판본으로는 『후쿠자와 전집(福澤全集) 』에 실린 것 외에 많지만, 최근 마쯔자와 히로아키(松澤弘陽) 가 교주(校注) 한『암파문고본(岩波文庫本) 』(1995) 이 제일 낫다.

후쿠자와가 읽은 서양책(手澤本) 까지 검토,자세한 주석을 달았기 때문이다.

아울러 마루야마 마사오(丸山眞男, 1914-86) 가 해설한 『문명론의 개략을 읽는다(‘文明論之槪略’を讀む) 』(岩波新書,1986) 세 권을 적극 권하고 싶다.

머지 않아 한글번역본(문학동네) 이 선보일 예정이다. 우리말 번역은 원로 불문학자 정명환 선생이 내놓은 바 있다(『문명론의 개략』, 홍성사, 198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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