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재벌 뺨치는 공기업 내부거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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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통신과 한국전력 등 대표적인 5대 공기업이 자회사를 부당 지원한 거래 규모가 무려 1조원이나 되며 이에 따라 과징금을 4백억원 가량 물어야 할 것으로 드러났다.

이익 극대화가 목적인 4대 재벌도 지난해 공정거래위원회의 부당 내부거래 조사에서 4백40억원의 과징금을 부과받아 "재벌은 변하지 않았다" 는 비판을 받았는데 이들보다 덩치도 훨씬 작고 공공성이 우선시돼야 할 5개 공기업의 부당 내부거래 규모가 그에 못지 않다니 정말 한심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심지어 자회사가 발행한 회사채.기업어음을 싼 이자로 사주거나, 자회사에 수의계약으로 용역을 주면서 인건비를 과다계상하는 지원 행태도 그저 놀랍기만 하다.

우리는 공정위의 부당 내부거래 조사에 전적으로 찬동하는 것은 아니다.

자칫하면 안정적 하청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장기 거래시의 가격 할인이나 일정 품질을 유지하기 위해 값을 더 쳐주는 거래 등도 '부당' 의 범주에 포함된다.

계열사를 합병해 하나의 회사로 만들어 사내 부서간에 거래할 때는 부당 내부거래로 간주되지 않는 논리적 허점도 있다.

우리가 지적하고 싶은 것은 공기업 개혁의 지지부진함이다. 공기업 등 공공부문은 그동안 개혁의 무풍지대에 놓여 있었다.

가장 성공적이었다고 자평(自評)하는 인력 감축만 해도 계약직이나 하위직에 집중됐으며, '1년 뒤 재고용' 이나 자회사로의 전배 등 눈가리고 아웅식이 태반이었다.

오죽하면 기획예산처가 지난 18일 "공기업이 감사원에 지적받은 6백여건의 지적사항 중 30%는 개선하지 않았다" 고 발표했을까. 공기업의 부당 내부거래는 이러한 개혁의 지지부진함을 새삼 입증한 사례다.

또 부당 내부거래 조사도 재벌을 먼저 할 게 아니라 공기업부터 먼저 했어야 했다.

4대 재벌은 4차까지 조사할 동안 공기업은 이제 겨우 2차에 불과하다.

공공부문이 모범을 보여야 민간이 따라오는데 이렇게 수순을 잘못 밟으니 구조조정에 대한 민간의 불만이 더 심해지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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