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피치] 새로운 사인문화 만들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홈런왕 마크 맥과이어(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 얽힌 사연.

어느 날 맥과이어가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고 있었다. 손님 한 명이 맥과이어에게 다가가 "여보게 맥, 나는 당신의 열렬한 팬이야. '친애하는 브루스에게' 라고 사인좀 해주겠나" 라며 흰종이를 내밀었다.

맥과이어는 잠시 그를 쳐다보더니 곧 종이를 받아들고 사인을 해주었다. 손님은 어깨를 으쓱거리며 종이를 받아들고 돌아섰다. 그 종이에는 '브루스, 밥좀 제대로 먹게 해주겠나, 마크 맥과이어' 라고 적혀 있었다.

골프 스타 리 트레비노의 사연. 트레비노가 어느 날 한적한 바에서 친구와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때 한 여성 팬이 트레비노에게 "어머 트레비노씨, 여기서 만나다니 너무 기뻐요. 사인좀 해주시겠어요" 라고 다가왔다. 그 여성은 한참 주머니를 뒤적이더니 종이가 없는 듯 5달러짜리 지폐를 꺼내 사인을 부탁했다.

트레비노는 '행운이 함께 하기를, 리 트레비노' 라고 적어주었다. 여성은 "사인을 평생 간직하겠어요" 라며 뛸듯이 기뻐했다. 한 시간 정도 지난 뒤 트레비노는 맥주를 한병 더 주문했고 거스름으로 5달러를 받았다. 지폐에 적힌 글은 '행운이 함께 하기를, 리 트레비노' 였다.

"팬들은 스타플레이어를 보면 앞다퉈 사인을 받는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종이를 내밀어 그를 만났다는 사실을 남에게 알리고 싶어한다. 그러나 그 사인은 정말 그 스타를 좋아해 기념으로 보관하기보다 받는 순간의 우쭐거림을 위한 의미가 더 큰 경우가 많다."

미국 스포츠 칼럼니스트 릭 라일리가 몇해 전 '올바른 프로 스포츠의 사인 문화를 위해' 라는 글에서 지적한 것이다.

국내 프로야구는 어떤가. 수첩의 맨 뒷장-어떤 때는 냅킨도 등장한다-을 아무렇지 않게 찢어서 잘 나오지도 않는 볼펜과 함께 불쑥 내미는 팬을 보면 제 아무리 마음씨 좋은 스타도 "이 사람이 내 사인을 여기다 받아 뭘 어쩌겠다는 건가" 라는 생각이 들게 마련이다.

반면 운동장 밖에서 한참을 기다려 정성껏 종이나 야구카드.앨범 등을 내민 팬에게 귀찮다는 듯-마치 자신의 신용카드 명세표에 사인할 때보다 더 무성의하게-이름을 휘갈겨놓고 '바쁜데 왜 이러느냐' 는 식으로 되쳐다보는 선수를 보면 그에게 품었던 환상이 싹 가시고 만다.

사인을 받을 준비가 안됐으면 정중히 악수를 청하는 것이 더 현명하다. 또 아무리 바빠도 팬을 무시하는 듯한 태도는 프로답지 못하다.

프로야구 출범 20년째다. 스타와 팬이 서로 존중하고 소중하게 생각할 때 올바른 사인 문화가 자리를 잡는다. 그래야 그 사인이 더 빛나고 소중해진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