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프로야구] 요미우리와 역지명

중앙일보

입력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역사를 살펴보면, 그 영광의 역사가 드래프트 제도와 밀접한 관련을 맺어 왔음을 알 수 있다.

일본야구가 드래프트제를 처음 실시한 건 1965년이었다. 그러니까 65년 이전에는 많은 돈을 제시하는 팀이 우수 선수를 싹쓸이 하는, 이른바 자유경쟁제를 해온 것이다.

이 결과 가장 큰 이득을 본 팀은 자금력 풍부하고 인기가 많은 요미우리와 한신이었다. 이 중에서도 요미우리는 65년 이전에 이미 나가시마와 왕정치 등 최고의 재목들을 싹쓸이 하는데 성공, 훗날 막강 V9 시대를 열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65년 전면 드래프트가 실시되고 나서부터 요미우리의 독주는 중단되었다. 드래프트에 의해 유망 선수들이 팀별로 골고루 분배되는 상황에선 제아무리 요미우리라도 평범한 구단으로의 전락을 막을수 없었던 것이다.

이 결과 V9이후부터 80년대 말까지 자이언츠는 재팬시리즈 우승을 단 두번(81,89년)밖에 하지 못하는 침체를 면치 못했다. 이런 자이언츠가 90년대 중반부터 다시 초강팀으로 떠오를 수 있었던 계기를 마련 해준게 93년부터 시행된 역지명제도였다.

역지명제도란 대학과 사회인 야구의 드래프트대상 선수들이 자신이 원하는 구단을 역으로 지목하고, 지명받은 구단이 이를 승락하면 입단이 인정되는 독특한 제도로써 각 구단마다 지명 1,2순위까지 역지명선수를 스카우트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역지명제도로 이득을 본 건 당연히 요미우리였다. 막대한 자금력과 요미우리 신드롬을 바탕으로, 자이언츠는 유망 선수들을 역지명으로 빼돌려 전력을 강화해 나갔다.

그 결과 98년 다카하시 요시노부,99년 우에하라 고지,작년 다카하시 히사노리로 이어지는 거물신인들을 역지명을 통해 영입한 요미우리는 이들의 활약을 바탕으로 작년도 재팬시리즈를 거머쥐며 초강팀으로 거듭날 기반을 다질 수 있었다.

지금도 요미우리의 역지명 마수는 그치지 않아서 2년전인 98년엔 아라카기 투수가 오릭스의 지명을 거부하고 요미우리 입단을 위해 실업팀으로 가버려 스카우트가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했고, 올해 드래프트에서도 오릭스가 지명한 투수 우쓰미가 요미우리 역지명을 위해 오릭스행을 거부하고 실업팀으로 가버리는 등, 역지명제도는 자이언츠를 위한 제도로 변질되어 가고 있는 모습이다.

최근 일본야구계가 올시즌 후부터 드래프트제를 바꾼다고 하는 보도가 있었다. 개정의 공식적인 이유가 유망주들의 메이저 유출(메이저리그는 올 6월부터 드래프트 지명대상國에 일본을 포함시킬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을 막기 위해서라곤 하지만 여기에 요미우리 견제심리또한 내재되어 있음을 부인할 수는 없는 것이다.

드래프트 개정의 최대 이슈를 역지명제도로 잡고 있는 것만 봐도 그렇다. 요미우리를 제외한 대부분의 구단이 역지명을 1명으로 줄이거나 역지명을 행사하는 구단에게 드래프트 1순위 지명권을 상실하게 하자는 등 역지명 규제책을 주장하고 있는 반면, 자이언츠는 오히려 고교생에게도 역지명을 허용해야 한다며 홀로 딴소리를 하고 있다. 한마디로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는 것이다.

이론의 여지없이 요미우리는 돈,인기,전통 등 거의 모든 면에서 일본 야구의 헤게모니를 가지고 있는 팀이다. 하지만 이런 독점적인 지위를 이용해서 그동안 요미우리가 스카우트 트러블,역지명제 악용 등으로 드래프트 질서를 해쳐온 것 또한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요미우리가 그동안 일본야구 발전에 큰 공헌을 하며 흥행메이커로서 활약했음에도 불구하고, 타 팀들로 부터 질시와 견제를 받으며 타깃이 되는 것이라 여겨진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