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사랑하는 싱싱'

중앙일보

입력

1990년대 초 국내에 번역된 소설 〈사람아 아, 사람아〉로 중국 현대문학의 인간 내음을 전하며 일대 선풍을 일으켰던 작가 다이허우잉(戴厚英).

매스컴 등을 기피해 '안개의 꽃' 이란 별명까지 가졌던 그가 미국으로 유학간 딸과 3년간 주고받은 편지 묶음집인 〈사랑하는 싱싱〉에선 어머니로서 내밀한 감정들을 드러내 놓는다.

해외여행이 자유롭지 못하던 80년대 중반, 다이허우잉이 선전 공항에서 딸을 출국시키고 돌아서며 되뇌는 말은 비장하기까지 하다.

"난 그 애를 키우면서 한 여성의 힘과 엄마로서의 사랑을 증명할 수 있었고, 외로움과 적막감을 이겨낼 수 있었다. 힘든 생활을 이겨내면서 나는 중년에 들어섰고, 그 애는 어른이 되었다. 그리고 지금 그 애는 내 생명의 일부분도 가지고 가버렸다. 그 애로 인한 많은 기쁨과 괴로움의 역사도 같이 가지고 가버렸다. 이 모든 것은 내가 한 번도 상상해 보지 않았던 일이다."

이국 땅으로 용감히 떠났던 딸도 엄마의 빈자리가 강하게 느껴지긴 마찬가지. "엄마! 정말 가능하다면 난 엄마 곁으로 날아가서, 엄마 품속에서 영원히 떨어지고 싶지 않아요. 하지만 난 알고 있어요. 그저 내가 선택한 길을 걸어가야 한다는 사실을. 사랑해요 엄마! 엄마를 위해서라면 제 모든 것을 버릴 수도 있어요. "

어느 모녀간인들 그런 애틋함이 없으랴마는 이들이 후에 맞닥뜨린 운명은 이 사연들을 더욱 가슴에 와닿게 만든다. 다이허우잉은 1996년 상하이(上海)의 자택에서 강도에게 살해된 채 발견됐다.

이 책은 미국 시카고 대학에 가있던 딸 다이싱(戴醒)이 뒤늦게 달려와 통곡하며 정리한 글들이다. 거기엔 개혁.개방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던 80년대 중국 지식인들의 고민도 녹아있다.

"엄마의 영혼은 죽지 않았다는, 엄마의 사상은 죽지않았다는 말을 깨닫게 됐다. 우리 둘 사이의 교류는 보다 높은 단계에 들어섰다는 것을 느꼈다."
〈사랑하는 싱싱〉/ 다이허우잉·다우싱 지음/ 박지민 옮김/ 청아출판사/ 8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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