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주목받았던 신인들(2) - 87~89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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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7년 - '악바리' 이정훈의 돌풍

87시즌을 앞두고 가장 주목받았던 신인 선수는 김재박의 계보를 이을 유격수로 아마시절부터 각광을 받았던 류중일(삼성)이었다. 메이저리그급 수비는 오히려 김재박보다 낫다는 평가를 들었던 그는 프로 입단과 동시에 삼성의 주전 유격수 자리를 꿰차며 아마 시절의 명성에 걸맞는 활약을 펼쳤다.

그러나 신인 돌풍의 핵심은 다름아닌 이정훈(빙그레)이었다. 대구상고 출신이었으나 연고구단 삼성의 지명을 받지 못한채 빙그레에 둥지를 트게 된 이정훈은 외야수 치고는 자그마한 체구로 아마에서도 거의 무명에 가까웠던 선수였다.

그러나 '악바리'라는 별명이 말해주듯 근성있는 플레이로 팬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으며 당시 22경기 연속안타라는 대기록을 수립하기도 했다. 성실한 자기관리,뛰어난 타격감을 과시하며 90년대 초반까지 빙그레의 트레이드 마크였던 다이너마이트 타선의 선봉으로 맹활약했다.

6.88년 - 신인농사의 대흉작

88 서울 올림픽이 열리는 바람에 아마의 대형 선수들이 대거 프로입단이 유보되면서 88시즌의 신인들의 활약은 미미하기 그지 없었다. 신인왕 경쟁은 같은 MBC 소속인 투수 이용철과 타자 김상호의 대결로 압축되었는데 이용철은 역대 신인왕 사상 최소승(7승)을 거두고도 신인왕에 오르는 행운을 차지했다.

7.89년 - 프로 제2세대의 본격적인 등장

88 올림픽으로 인해 프로입단이 유보되었던 거물급 신인들이 속속들이 입단하면서 동시에 각 팀별로 주전급의 세대교체가 가속화되기 시작했다.

이른바 프로야구 2세대의 등장이라고 할 수 있는데 각 팀별로 입단한 주요 신인들을 살펴보면 해태의 '투수 3총사' 이강철,조계현,이광우, 빙그레의 송진우,황대연,강석천, 삼성의 강기웅,류명선,최해명, MBC의 김기범,노찬엽,최훈재, OB의 이진,김동현,구동우, 롯데의 서호진,김청수등을 꼽을 수 있다.

89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흥미로운 일화가 있는데 서울 라이벌 OB와 MBC는 해마다 다른 구단에 앞서 신인 1차지명 추첨을 실시했다. 주사위로 우선순위가 결정되는데 매년 주사위 대결에서 고배를 들었던 OB는 사상 처음으로 우선권을 거머쥐게 되었다.

좌완투수난에 시달리던 OB는 신인들중 최대어중에 한명으로 꼽히던 김기범을 당연히 지명할 것으로 예상됐었다. 그러나 의외로 무명에 가까운 또다른 좌완투수인 이진을 지명하는 모험을 감행하는데 아마시절 혹사당한 김기범보다는 어깨가 싱싱한 이진이 가능성이 더 높다는 판단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결과는 대실패였다. 김기범은 MBC-LG에서 좌완 에이스로 제몫을 해내지만 이진은 빠른 공을 지니고도 고질적인 제구력 불안으로 별다른 활약을 보이지 못한채 선수생활을 마감하고 만다.10년이 넘도록 OB를 괴롭혀온 지긋지긋한 좌완투수 징크스는 여기에서 비롯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난히도 대어급 신인들이 풍성했던 89시즌의 신인왕은 점치기가 상당히 힘들 정도였다. 전문가들은 이강철,조계현,송진우,강기웅,노찬엽 등을 신인왕 후보로 꼽았었다. 하지만 89시즌의 신인돌풍은 아무도 예상치 못한데서 비롯됐다.

매년 꼴찌에서 헤매던 태평양은 투수 조련사 김성근 감독을 영입하며 시즌 3위의 성적에 창단 후 처음으로 플레이오프까지 오르는 기염을 토하는데 그 돌풍의 핵심은 다름아닌 신인 투수 트리오 박정현.최창호,정명원이었다.

유신고를 졸업하고 600만원이라는 헐값에 88년에 입단한 박정현,경북고를 졸업했으나 삼성의 지명을 받지 못하고 어렵사리 태평양에 들어온 최창호, 마찬가지로 군산상고 출신이지만 해태의 지명을 받지 못하고 타향살이를 하게된 정명원. 철저한 무명이었던 이들은 김성근 감독의 혹독한 조련속에 새로이 거듭나며 신인 돌풍을 일으켰다.

190cm의 장신 잠수함 투수 박정현은 신인 사상 최다승인 19승을 거두며 강기웅,이강철등 쟁쟁한 경쟁자들을 제치고 신인왕을 거머쥐는 영광을 누렸다.

89시즌은 투수부문에서 세대교체의 바람이 거셌는데,기존의 최동원,김시진등이 뚜렷한 하향세를 보인반면 다승부문에서 박정현이 19승을 거둔것을 비롯 이강철(15승),류명선(14승),정명원(14승),송진우(11승) 등이 상위권에 이름을 올렸으며 탈삼진 부문에서 최창호가 '신 닥터 K'로 명성을 얻는 등 신인투수들의 돌풍이 유난히 돋보였던 시즌이었다.

89시즌은 프로 원년세대의 선수들이 노쇠화 현상을 보임과 동시에 제2세대 선수들이 전면에 부상하면서 세대교체가 이루어지기 시작한 시즌으로 기억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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