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가는 아이 사랑] 디지털 시대의 아이 참사랑

중앙일보

입력

유치원이나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를 둔 엄마 몇 명이 모이면 이야기의 중심은 예나 지금이나 ''아이 교육'' 이다.

어느 학원을 보내느냐, 교사의 질은 어떠냐, 학습지는 무엇을 시키느냐, 어떤 교구가 아이 창의력에 좋다고 하더라 등을 놓고 한동안 설왕설래한다.

어느 정도 분위기가 무르익으면 ''컴퓨터'' 로 주제가 바뀐다.

틈만 나면 컴퓨터 모니터 앞에 앉아 있는 아이들 얘기다. 무작정 야단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마냥 두고 볼 수도 없다는 것이 한결같은 하소연이다.

21세기의 출발점에 서있는 부모들의 자식 키우기의 화두는 ''전통식-잘난 아이 만들기'' 와 ''미래형-컴퓨터에 빠진 아이 해결법'' 두가지로 함축된다.

워낙 사회가 급변하다 보니 자신이 부모에게 배운 자식키우기 방식은 전혀 통하질 않는다.
공부만 잘하면 된다던 개념도 무너진지 오래고, 운동이든 노래든 자신이 원하는 한가지라도 제대로 잘하면 성공했다고 평가하는 시대다.

물질적 풍요로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蠻斂?싶지만 아이들은 따뜻한 정(情) 이 그립다며 아우성이다.
컴퓨터 실력은 아이들 따라가기도 버겁다.

부모들이 자라던 아날로그 시대는 가고 아이들의 세상은 디지털 시대라고 한다.
아날로그.디지털의 개념을 구분 못하는 부모들은 자식들 사이에서도 왕따 취급을 받는다.

아날로그 부모가 디지털 아이를 사랑하는 방법의 우선 순위로 전문가들은 ''부모의 디지털화'' 를 꼽는다.

채팅.커뮤니티 사이트 ''세이클럽'' 을 운영하는 네오워즈의 나성균 사장은 "부모도 디지털을 알아야 거기에 걸맞은 아이에 대한 사랑과 교육방법이 나온다" 고 일침을 놓는다.
디지털 문화를 받아들여야 아이들이 원하는 눈높이 사랑에 근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디지털 문화의 폭력물이나 음란물 같은 ''쓰레기 정보'' 로부터 아이들을 보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전에 사는 조용태(36) 씨와 부산의 황진업(36) 씨의 사례는 매우 흥미롭다.
이들은 인터넷 게임을 즐기는 딸과 아들 덕분에 가족들끼리 인연을 맺었다.
이들 두 가족이 만난 것은 지난해 한 네트워크 게임사이트였다.

평소 딸 정현(9) 이가 좋아하는 이 게임의 내용도 알아볼 겸 사이트에 들렀던 조씨는 의외의 게임 상대인 황씨를 만나 무척 당황했다.

그러나 게임을 하면서 알아보니 황씨 역시 아들 다롱(10) 이가 빠져있는 게임내용을 알기 위해 들어온 것. 두 아빠는 서로 통성명을 하고 ''이것도 인연'' 이라며 친해졌다.
부인끼리도 인사를 나누고 ''딸만 셋'' ''아들만 둘'' 인 두 가족이 서로의 자식을 내 자식처럼 여기며 지내고 있다.

지난 주말에는 각자 아이들과 함께 서울 근교의 놀이공원으로 집합, 일명 ''가족 번개팅'' 이 이뤄져 양쪽 집 아이.부모 모두 즐거운 하루를 보냈다고 한다.
디지털 아이들의 만남이 아날로그 부모의 만남으로 이어진 셈이다.

한국상담심리연구소에서 부모역할훈련을 강의하는 조무아씨는 "부모라고 무조건 아이들을 가르치려고 할 것만 아니라 앞서가는 아이들에게 부모가 배우는 것도 자식 사랑의 한 방법" 이라고 조언한다.

요즘 아이들 대부분은 부모들보다 컴퓨터나 영어 실력이 낫다.

서울 서초구 잠원동에 사는 김영해(35) 주부는 초등학교 4학년인 아들에게 컴퓨터를 배워 컴맹을 탈출했다.
김씨는 "부모의 권위가 떨어질까봐 처음엔 아이에게 배우는 것을 주저했다" 며 "그러나 애가 엄마에게 가르쳐 줄 수 있다는 것을 즐거워하며 기쁜 마음으로 열심히 가르쳐 주더라" 고 말했다.

초등학교 2학년 딸 아이를 둔 양은주(38.분당 신도시) 주부는 어릴 적부터 딸이 영어학원에서 돌아오면 복습을 함께 하는 방법으로 아이에게 영어를 배웠다고 한다.

21세기 주역이 될 우리 아이들은 아날로그 부모가 어릴 적 즐겨보던 공상만화의 내용을 하나하나 현실로 체험하고 있다.
벌써 인터넷에서 친구를 만나고, 미래의 영화도 보고, 식사를 해결한다.

이미 부모들 세대와 삶의 방식을 달리하고 있는 요즘 아이들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끄는 해답을 찾는 일은 어려운 일이다.

"윽박지르거나 강요한다면 당장은 어떨지 몰라도 큰 효과가 없으며 아이들에게는 씻을 수 없는 상처만 줄 뿐입니다. "

서울시청소년상담실의 이규미 실장의 말이다.

부모보다 잘난 아이로 키우고 싶은 부모의 전통적 욕심은 과거와 다를 것이 없지만 ''부모의 주는 사랑'' 과 ''아이가 받는 사랑'' 이 맞아 떨어지는 것이 미래에도 최고의 아이 사랑으로 정의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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