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문화 속의 한자 익히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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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어 공부는 일단 부담스럽습니다. 그래서 한글로만 모든 언어생활을 할 수 있다면 더 없이 좋겠지요. 그렇다면 한자는 어떤가요? 한자도 외국어의 하나로 던져놓고, '그거 모르고도 편히 살 수 없을까'라고 이야기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겁니다. 물론 한글 세대인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한자로 쓸 수는 없어도 쉽게 통하는 말들이 적지 않습니다.

이를테면 '사이비(似而非)' '엽기(獵奇)' '불혹(不惑)' 따위의 말은 한자로 쓰기 어려워 하지만 이미 뜻은 다 통합니다. 굳이 한자로 써야 할 일이 없지요. 그러나 이 말들의 한자어를 알고 있다면 그 사용의 범위는 훨씬 다양해질 수 있을 것이며, 보다 풍요로운 언어생활을 할 수 있게 될 겁니다.

뿐만 아니라 한자를 모르고 우리의 전통문화를 이해한다는 것은 애시당초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래서 우리 스스로 우리의 민족문화를 거부하지 않는 한 싫어도 배워야 할 것이 한자입니다.

게다가 뜻글자인 한자를 배우는 일은 우리의 생각을 보다 깊이 있게 할 수 있는 수단이 된다는 데에도 반대할 사람은 없는 듯 합니다. 꽤 오래 전에 나왔던 '파자 이야기'(홍순래 지음, 학민사 펴냄)라는 책이 기억나는 것도 그래서입니다. 한자의 구조를 분해하면서 그 뜻을 파헤치는 동안 우리 생각을 넓힐 수 있는 것이지요.

어쨌거나 한자를 이야기하면서 한글 전용론이니 국한문 혼용론이니를 논하고자 하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한자라는 우리 문화에 깊이 뿌리박혀 있는 하나의 언어를 바르게 배울 필요가 있지 않느냐 하는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때마침 한자를 흥미롭게 익힐 수 있도록 돕는 책 2권이 나란히 나왔습니다. 하나는 장충고등학교 한문 교사인 오형민 님이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렸던 한자와 한자 공부에 얽힌 이야기를 엮은 'CD-ROM과 함께 떠나는 이야기 한자여행'(한승 펴냄)이고, 다른 하나는 한양대 중국문학과 교수 정석원 님이 동아일보에 연재하는 컬럼의 제목을 그대로 딴 '문화가 흐르는 한자'(동아일보사 펴냄)입니다.

두 책은 여러 모로 비슷합니다. 정석원 님의 책은 하나의 한자 단어를 풀이하며 그 안에 담긴 우리 조상들의 문화와 속뜻을 찾아내는 방식이고 오형민 님의 책은 우리 문화 속에 들어있는 한자 단어를 찾아내는 방식입니다. 두 가지가 출발점은 서로 정 반대쪽입니다. 한자에서부터 이야기와 문화를 찾아내는 방식과 이야기와 문화에서부터 한자를 찾아내는 식이니까요.

그러나 사실 두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전달되는 효과는 같습니다. 한자를 그저 한자 그 자체로만 익히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뜻과 문화, 그리고 감춰진 이야기를 재미있게 읽는 동안 한자와 그 뜻을 익히는 방식이니 결과적으로 서로 다르다 할 수 없는 겁니다.

언어를 습득하는 방식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습니다만, 이 책들처럼 이야기를 통해서 배우는 것이 가장 효과가 크다고 합니다. 언어는 곧 사람이 사람다운 삶을 누리기 위해 가장 기본적으로 필요한 수단인 까닭입니다. 그래서 말의 근원을 따져서 배웠을 때 쉽게 잊혀지지 않을 뿐 아니라 그 말을 가장 바르게 쓸 수 있게 될 겁니다.

정석원 님은 '엽기(獵奇)'라는 젊은이들 사이에 자주 쓰이는 어려운 한자 말을 보면, 요즘 쓰이는 뜻과 달리 원래는 '사냥하듯 쫓아다니면서 기이한 것을 추구하는 것'임을 옛 수렵 채취 생활 때의 이야기와 함께 풀어놓습니다. 요즘 '엽기적'이라는 표현과는 차이가 적지 않음을 알게 될 겁니다.

물론 새로운 문화현상에 의해 언어의 의미가 바뀔 수 있다는 것을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새로운 의미를 받아들인다 해도 애초의 뜻을 바르게 이해하는 게 필요한 거죠. 그래야 같은 어원을 가지는 다른 말들도 이해할 수 있게 되고, 또 생각의 넓이도 더 넓힐 수 있는 겁니다. '엽기(獵奇)'라는 말을 바르게 이해했을 때 '엽색(獵色)'이라는 말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이라는 이야기지요.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우리 전통문화를 이해하는 데에 한자에 대한 이해는 필수지요. 그런 생각에서 쓰여진 책이 바로 오형민 님의 책입니다. 오형님 님은 한자를 먼저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문화를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먼저 꺼낸 이야기가 12간지, 절기 이야기입니다. 며칠 뒤에 다가올 설날 어른들과 함께 앉으면 자연스레 나올 이야기 가운데 하나일 겁니다.

간지와 절기 이야기를 바르게 이해하는 데 한자가 없으면 안 될 겁니다. 그래서 오형민 님은 간지와 절기에 들어가는 한자를 그 쓰임새와 함께 설명하는 방식을 썼습니다. 또 그에 맞는 우리 풍속을 함께 이야기하는 것도 빼놓지 않았지요.

이를테면 음력 2월 절기인 '경칩(驚蟄)'을 이야기할 때 "이때의 풍속(風俗)에는 개구리 정충(精蟲)이 몸을 보(保)한다고 해서 개구리 알을 잡아먹고, 흙일을 하면 탈이 없다 해서 담을 쌓거나 벽을 바르는 일을 했다. 또한 이 날 보리 싹의 성장 상태로 보리 농사의 풍흉(豊凶)을 점쳤다"고 덧붙입니다. 재미있는 우리 문화와 관련한 상식 속에 들어있는 한자를 익히게 하자는 겁니다.

오형민 님은 이 책의 내용을 이미 자신의 홈페이지(www.hanja.pe.kr)에 올려서 37만 명의 독자들이 읽고 갔다고 합니다. 이번에 엮어낸 책에는 CD도 함께 제공됩니다. 책으로 편안히 한자 이야기를 읽을 수도 있고, CD로 컴퓨터에서 익힐 수도 있습니다.

민속 명절, 설날을 맞이하며, 우리 민속 안에 담긴 한자를 한번 쯤 되새겨 볼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Books 고규홍 편집장



* 이 글에서 함께 이야기한 책들

'이야기 한자 여행'(오형민 지음, 한승 펴냄)

'문화가 흐르는 한자'(정석원 지음, 동아일보사 펴냄)

'파자 이야기'(홍순래 지음, 학민사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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