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의 얼굴]차범근에 관한 소고 (1)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20세기를 마감하는 1999년의 12월. 세계축구 유력전문지인 <월드사커>는 20세기를 빛낸 축구스타 100인을 선정, 발표하였다.

그 중 79위에 올라와 있는 인물이 너무나도 우리들이 잘 알고 있는 차범근이었다.

차범근! 그는 1953년 경기도 화성에서 태어나 축구와 인연을 맺었다. 서울 경신고를 거쳐 고려대에 72년에 입학하자마자 그때 당시로는 최연소인 19세로 태극마크를 달았다.

아마 그때부터 80년대 말까지는 '차범근 시대'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엄청난 인기를 누리며 성장을 거듭했다. 179cm의 72kg의 당시로선 작지않은 체구에 100m를 11초 4에 주파하는 빠른 기동력까지..아시아 최고의 스트라이커로 평가 받았다.

그는 꿈이 컸다. 당시 유럽의 최고리그로 꼽히는 분데스리가로 그는 발길을 돌렸다. 성공과 실패라는 반반의 확률을 가지고 그는 100% 확신을 만들었고, 88년 소속팀인 레버쿠젠을 UEFA컵 우승으로 이끌었다.

10년 동안 유럽리그에서 활동하면서 총 98골을 넣어 당시 외국인선수로는 최다골을 넣은 선수가 되었으며 유럽에서는 '차붐'이라고 하면 다 알 정도로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즉, 그는 아시아를 평정하고 축구의 본가인 유럽에서도 성공을 거듭하여 명실상부한 우리나라 역대 최고의 스트라이커로 우뚝 선 것이었다.

하지만 90년..그는 지도자로 다시 축구인생을 시작하였다. 당시 현대축구단을 맏아, 4년여간 그의 축구철학을 선수들에게 심어주었지만, 이렇다할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감독자리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하지만 97년 1월. 그에게 또다시 기회가 찾아왔다. 한국월드컵 대표팀 감독으로 전격 발탁된 것이었다. 당시 분위기는 우리나라의 2002년 월드컵 유치붐과 맞물려 축구에 대한 국민들의 사랑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가고 있었다.

우리는 그때 한 연극인이 했던 말을 다들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차 감독, 나 믿어요!"... 실로 엄청났다. 차범근은 월드컵 지역예선을 아주 성공적으로 치러냈다.

그의 행동 하나하나가 매스컴의 주목을 받았고, 당시 경기 중 기도하는 장면이 화면에 비치어, 모 교수와 신문에서 논쟁을 벌이는 해프닝까지 벌일 정도로 그의 행동은 국민들의 크나큰 관심사였다.

한마디로 영웅이었다.

<계속...>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