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살려면 왜 적게 먹으라고 할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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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0호 28면

올해는 필자가 대학을 졸업한 지 25주년이 되는 해로 얼마 전 대학 창립기념일에 재상봉(homecoming) 행사가 있었다. 몇몇 친구는 그동안 간혹, 혹은 자주 만나 쉽게 얼굴을 알아볼 수 있었지만 졸업 후 정말 처음 만나는 친구들은 너무도 변해 알아볼 수 없는 경우도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모두 “옛날 그대로”라고 인사를 건넸지만 선의의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한마음으로 알고 있었다. 중년 아니면 이른 노년의 아저씨·아줌마로 변한 친구들의 모습 속에서 인정하기 싫은 늙어 가는 내 모습이 보였다. 생명을 갖고 태어난 존재는 생로병사의 과정을 피할 수 없지만 과학적으로 우리는 왜 늙어 가는 걸까?

송기원의 생명과 과학 노화

생명현상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이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 지난 몇십 년간 노화의 원인과 기전에 대해 많은 연구를 하고 있지만 아직 명확한 해답은 없다.
가장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설명은 ‘살아가면서 여러 환경에 노출돼 생명 현상을 유지하는 정보인 유전체 DNA에 손상이 축적된 결과’라는 것이다. 음식을 섭취하고 에너지를 만들어 내는 호흡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만들어지는 활성산소가 DNA 손상을 유발한다. 따라서 세포가 활성산소에 계속 노출되고 더 많은 유전체의 손상이 생겨 세포가 제대로 기능을 할 수 없게 변질되거나 사멸하는 것이 노화의 원인이 될 수 있다. 또 자외선, X선, 내·외적 스트레스, 담배 등 보통 발암물질이라고 하는 것들에 노출되면 DNA가 손상되므로 이 역시 노화와 질병의 원인을 제공한다. 또 다른 가설은 위축성 위염(atrophic gastritis) 등 노화와 함께 나타나는 질병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면역계가 자신에 대해 항체를 만드는 자가면역반응에 의한 것이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호르몬의 기능 약화로도 설명된다. 시상하부-뇌하수체-고환 축은 다양한 생식 관련 호르몬을 분비해 세포 분열과 성장을 촉진시키지만 생식이 끝나면 서서히 분비량이 줄어 노화를 촉진시킨다는 것이다. 남성은 30세 이후 서서히, 여성은 폐경에 의해 급격히 호르몬 분비가 감소되면서 세포 분열이 줄고 기능이 원활치 않아 사멸이 유도되고 장기나 기관의 노화가 진행된다고 한다. 실제로 여성은 폐경 후 심장질환이나 알츠하이머병·골다공증 등 노화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는데, 여기에 인위적으로 호르몬을 투약하면 노화 속도가 늦춰지는 것 등이 이 가설에 대한 증거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또 다른 가설은 세포에 시계가 있어 너무 노화하면 더 이상 분열하지 않고 사멸한다는 것이다. 세포에 존재하는 노화시계는 유전정보를 담고 있는 염색체의 끝부분인 텔로미어(telomere)인데, 한 번 DNA가 복제될 때마다 조금씩 끝부분을 유실해 짧아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세포가 여러 번 분열해 텔로미어가 더 짧아질수록 노화한 세포라는 것이다. 실제로 노인과 성인·어린아이의 텔로미어 길이를 재 보면 노인이 가장 짧고 아이가 가장 길며, 아이 세포가 가장 여러 번 세포 분열을 한 뒤 사멸한다. 이렇게 세포가 일정한 횟수만큼 분열한 뒤 노화해 사멸하는 현상은 1961년 레오나드 하이플리크 박사가 처음 발견했다.

최근에는 노화 조절 유전자들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 99년 MIT 생물학과의 가란테 교수 연구실에서 최초로 효모 유전자인 Sir2가 보고됐고 이후 효모·초파리·선충·인간세포에서 Sir2와 유사한 유전자가 알려졌다. Sir2나 이와 유사한 유전자에 의해 발현되는 설투인이라는 단백질은 활성이 증가할수록 노화가 억제되는 것으로 밝혀졌다. 세포에 존재하는 다른 단백질들을 변형시켜 생리적 변화를 유발하고 노화를 억제한다고 한다.

재미있는 것은 이 단백질이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NAD라는 세포 내 아주 작은 화학물질이 필요한데 NAD의 합성이 음식물 섭취 및 대사와 밀접하게 관련돼 있고, 특히 소식했을 때 많이 만들어진다는 점이다. 소식이 노화 억제와 관련 있다는 보고는 여러 차례 있었고 소식하면 활성산소가 적게 만들어져 노화가 억제되는 것으로만 생각했는데, 노화 억제 단백질까지 활성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몇 년 전쯤 포도주에 들어 있는 레스베라트롤이라는 물질이 설투인 활성을 늘린다 해서 포도주 판매가 늘고 ‘사랑의 묘약’이 아니라 ‘젊음의 묘약’으로 불리는가 싶더니 요즘은 건강보조식품으로 개발돼 팔리고 있다. 레스베라트롤보다 휠씬 더 효과가 좋은 유기분자를 합성해 ‘젊음의 묘약’으로 개발하고 있다.

그러나 어떤 약이 노화를 지연시킬 순 있어도 억제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가장 좋은 노화방지법은 소식과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것, 즉 욕심을 버리는 것 같다. ‘잎은 많으나 뿌리는 하나, 젊은 날 내내 태양 아래서 나는 잎과 꽃을 자랑했네. 나 이제 시들어 하나의 진실이 될거나’라고 노래했던 시인 예이츠처럼 하나의 진실이 될 준비를 하는 것이 현명하게 늙어 가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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