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께 고민 얘기한 적 있나요? 160명 중 117명이 “상담한 적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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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주면 스승의 날이다. 우리나라는 예부터 가르치는 직업에 각별한 존경을 표해 왔다. ‘제자는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말이 통용될 정도였다. 최근에는 상황이 다르다. ‘교권이 땅에 떨어졌다’고들 한다. 스승의 날 풍경도 달라졌다. 교실마다 ‘스승의 은혜’ 노래가 울려 퍼지고 졸업생들이 선물을 안고 모교를 찾는 모습은 찾기 힘들다. 선물과 촌지에 대한 학부모 부담을 덜어 준다는 명목으로 스승의 날을 아예 휴일로 정하는 학교도 적지 않다. 초등학생들은 스승의 날을 어떤 마음으로 맞고 있을까. 어떤 선생님을 원하고 있는지 열려라 공부가 직접 물었다. 초등교육 전문 사이트인 아이스크림교육연구소(www.home-learn.com)의 도움을 받아 전국 171명의 초등학생 1~6학년에게 서면 인터뷰를 실시했다. 질문은 총 14 문항이며, 모두 주관식으로 구성됐다.

글=박형수 기자 , 질문 감수=건국대 미래지식교육원 정철희 교수

서울 동산초 6학년 3반 학생들이 ‘내가 바라는 선생님’이라는 주제로 그림을 그렸다. ‘잘 가르쳐주는 선생님’ ‘친구처럼 친근한 선생님’을 바라는 학생들이 많았다. [황정옥 기자]

고학년으로 갈수록 불만 많아

초등학생들이 선생님과 나누고 싶은 고민 1위는 공부와 성적이다. 70명의 학생이 ‘공부를 잘하고 싶다’고 답했다. 2학년 학생부터 5·6학년까지 학년을 막론하고 공부에 대한 고민을 토로했다.

 또래 친구들의 짓궂은 장난 때문에 괴롭다고 응답한 학생은 42명이다. 장난이나 괴롭힘을 당할 때 교사가 단호하고 공정하게 대처해 주기를 원하고 있었다. ‘놀리고 장난치는 친구를 선생님이 좀 더 따끔하게 혼내 줬으면 좋겠다’거나 ‘떠드는 친구를 선생님께 말씀드렸더니 그냥 참으라고 해서 속상했다’는 것이다.

 ‘고민이 있다’고 밝힌 160명의 학생 중 ‘교사에게 털어놓은 적이 있다’는 학생은 43명에 불과했다. 나머지 117명의 학생은 ‘교사에게 고민 상담을 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1~2학년은 ‘부끄러워서’ ‘선생님이 바쁘니까’ 등의 이유를 들었다. 고학년으로 갈수록 ‘(고민 해결은 안 해 주고) 숙제만 더 내준다’ ‘고민하지 말라고 간단히 얘기하고 넘어간다’며 교사에 대한 불신과 불만을 나타냈다.

 교사에게 관심을 받고 싶어하는 아이들의 심리도 읽혔다. ‘선생님에게 말하고 싶은 마음속 이야기’를 묻자 대다수 학생이 교사에게 특별한 관심을 받았던 경험을 적고 ‘그때 정말 감사하고 좋았다’고 털어놨다. ‘선생님이 내 손을 잡고 기도해 주셨다’(2학년), ‘방과후에 나에게만 리코더 부는 법을 따로 알려 주셨다’(4학년)는 식이다.

 ‘선생님이 나를 좋아한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125명의 학생이 ‘그렇다’고 답했다. ‘아니다’고 답한 45명은 ‘선생님이 나를 볼 때 표정이 일그러진다’ ‘다른 친구 말만 듣고 나한테는 이야기할 기회를 안 줬다’ ‘공부를 못하기 때문에’ 등등을 이유로 꼽았다. 이들이 쓴 ‘선생님에게 말하고 싶은 마음속 이야기’도 인상적이다. ‘선생님이 모든 학생을 똑같이 사랑해 줬으면 좋겠다’ ‘선생님이 내 이야기 좀 들어줬으면 좋겠다’는 내용이다.

부모가 부정적이면 아이도 부정적

도발적인 질문도 던져 봤다. 학생들에게 ‘선생님을 존경하나요?’라고 물었다. ‘추락하는 교권’에 대한 세간의 우려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결론부터 말하면 교사는 여전히 학생들에게 존경의 대상이었다. ‘아니요’라고 답한 학생은 13명에 불과했다. ‘수업시간에 복도에 나가 있으라고 해서’(3학년), ‘학급 임원만 혼내서 서운하다’(4학년), ‘(공부 방법은 안 알려 주고) 그냥 열심히 하라고만 하셔서 못 미덥다’(6학년)는 내용이었다.

‘존경한다’고 말한 158명의 학생은 ‘선생님의 모든 면을 존경한다’ ‘내가 모르는 걸 알려 주시는 분이라 대단하다’ ‘아픈 몸을 이끌고 열정적으로 수업하는 모습에 감동했다’고 이유를 밝혔다. ‘공평하기 때문에 존경한다’는 답변도 적지 않았다. ‘숙제 안 해 오고 잘못한 친구들에게 화내실 때는 무섭지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4학년)는 의견도 눈에 띄었다.

 ‘부모님은 가정에서 선생님에 대해 어떻게 이야기하는지’도 물었다. 아이들의 생각은 부모의 영향을 받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대다수 학부모가 자녀에게 교사에 대해 긍정적인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부모에게 ‘열정적이고 본받을 만한 선생님이다’고 들었다는 학생이 100명이었다. ‘모르겠다’ ‘아무 말씀 안 하신다’는 식의 답변은 67명, ‘(선생님에 대해) 별말씀은 없지만 (부모님의) 표정이 좋지 않다’처럼 부정적인 답을 한 학생은 4명이었다.

 주목할 만한 점은 부모가 교사에 대해 긍정적인 이야기를 들려준 아이들 중 ‘교사를 존경하지 않는다’고 답한 학생이 한 명도 없었다는 사실이다. ‘아무 말씀 안 하신다’고 답한 학생 중 9명, 부정적 이야기를 들었다는 학생은 4명 전원 ‘존경하지 않는다’고 답해 눈길을 끌었다.

우리 말에 귀 기울여 주는 선생님을 원해요

학생들의 학교 생활은 즐거울까? ‘선생님을 만나는 게 행복한가요?’라는 질문에 155명이 ‘그렇다’고 말했다. ‘(선생님이) 친구처럼 다정하고 칭찬도 많이 해 주신다’는 대답이 많았다. ‘나같이 공부를 못하는 학생에게도 눈을 바라보고 이야기해 주신다’(5학년)는 답변도 있었다.

 ‘행복하지 않다’고 답한 15명의 학생이 밝힌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선생님이 차별해서 싫다’와 ‘화를 내는 선생님이 무섭다’는 것이다. 4학년 학생은 선생님에게 오해를 받았던 경험을 세세하게 적으며 억울한 마음을 털어놓기도 했다. 청소시간에 가방을 멘 채로 바닥을 쓸고 있었는데 교실에 들어와 그 모습을 본 선생님이 ‘왜 청소 안 하고 집에 가려 하느냐’며 호되게 나무랐다는 것이다. 또 다른 학생은 ‘선생님이 말을 거칠게 하고 야단을 칠 때면 얼굴도 못 쳐다보게 하신다’며 ‘선생님, 저희 말도 좀 들어주시고 등짝 좀 그만 때리세요’라고 썼다.

 스승의 날, 초등학생들이 교사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남겼을까. 109명의 아이가 편지를 썼다. ‘사랑합니다’ ‘존경합니다’ ‘죄송합니다’가 주된 내용이다. ‘죄송하다’고 쓴 학생들은 ‘그동안 말 안 듣고, 떠들고, 숙제도 안 해서 선생님의 속을 썩였다’며 ‘앞으로 열심히 하겠다’는 다짐도 덧붙였다. 3~4학년 학생들 중에는 ‘선생님과 좀 더 가까워지고 싶어요’라는 소망을 적은 아이도 많았다. 5~6학년 학생들은 자신들의 요구사항을 적기도 했다. ‘제발 화 좀 그만 내세요’라는 지적부터 ‘숙제 조금만 내주세요’ ‘일방적으로 혼내지 마시고 우리 말에도 귀 기울여 주세요’라는 내용들이다.

스승의 날, 초등학생 171명에게 물어보니

●선생님을 존경하나요?

-네, 배 아팠을 때 손으로 만져 주셨어요.

-네, 모르는 문제 화내지 않고 여러 번 알려 주셨어요.

-네, 잘못한 아이를 호되게 야단쳐 주셨어요.

-네, 내 마음을 이해해 주셨어요.

-아니요, 학급 임원만 혼내서 서운합니다.

-아니요, 너무 심하게 혼내시는 것 같아요.

-아니요, 선생님에게만 잘 보이려는 아이만 예뻐해요. 

●부모님은 선생님에 대해 어떻게 이야기하나요?

-훌륭한 분이니 믿고 따르거라.

-늘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본받아야 한다.

- 무섭고 화를 잘 내시지만 ○○가 잘하면 예뻐해 주실 거야.

-이런 선생님도 있고, 저런 선생님도 있단다.

-별다른 이야기가 없다.

-선생님에 대해 말씀은 없으신데 표정이 좋지 않으시다.

●선생님은 나를 좋아한다고 생각하나요?

-네, 저를 보고 활짝 웃어 주세요.

-네, 발표를 자주 시켜 주시니까.

- 네, 난 공부도 못하는 데 선생님이 내 눈을 바라보고 얘기해 주세요.

-아니요, 선생님이 저만 보면 인상이 일그러져요.

-아니요, 공부를 못하니까.

- 아니요, 항상 다른 친구 말만 듣고 저에게는 말할 기회를 안 줘요.

●스승의 날, 선생님께 메시지를 남겨 보세요.

-장난 줄이겠습니다. 죄송하고 감사합니다.

-건강하시고 오래오래 사세요.

-선생님은 가장 훌륭한 선생님이십니다.

-지금도 잘해 주시지만, 더 잘해 주세요.

- 저번에 선생님께 카네이션 달아 드렸잖아요. 저는 그때 느낌이 너무 좋았어요. 감사합니다.


교사는 제자들의 마음 얼마나 잘 알까

학생들과 같은 인터뷰 질의서를 초등학교 교사에게 보냈다. ‘제자들이 어떻게 답할지 예상 답안을 적어 달라’고 부탁했다. 서울 한서초등·화랑초등 교사 14명이 답변을 보내왔다.

 대다수 교사는 학생들의 마음을 정확히 헤아리고 있었다. 초등 1~6학년 모두 공부와 성적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고민을 교사와 상담하는 경우도 적을 것으로 내다봤다. ‘부끄러워서’ ‘어차피 공부나 하라고 할 테니까’라고 아이들의 목소리와 정확히 일치한 답변을 적어 온 교사도 많았다.

 아이들의 생각과 가장 큰 차이를 보인 질문은 ‘선생님이 존경스러웠던 순간은 언제인가요?’였다. 대다수 교사는 ‘친절하게 대해 줄 때’와 ‘수업시간에 모르는 부분을 명쾌하게 설명할 때’라고 답했다. 하지만 학생들은 ‘용서해 줄 때’(75명)와 ‘이해해 줄 때’(43명)를 가장 많이 꼽았다. ‘잘못을 했는데 (선생님이) 내 마음속을 훤히 들여다보는 것처럼 꼬치꼬치 물어본 뒤 용서해 주셨다’며 구체적인 상황을 표현한 학생도 있었다.

 ‘선생님이 가장 무서울 때’에 대한 질문에서도 미묘한 차이를 보였다. 교사와 학생 모두 ‘꾸중 들을 때’를 1위로 꼽았다. 하지만 교사는 ‘학생이 잘못을 저질러 꾸지람을 들을 때 교사를 무서워할 것’이라고 답한 반면 학생들은 ‘머리 끝까지 화가 나서 소리를 지를 때’ ‘물건을 던지고 화를 폭발할 때’ ‘목덜미를 잡을 때’ ‘복도에 나가라고 할 때’라고 답했다.

 학생들은 교사가 화를 내는 원인은 잘 인지하지 못한 채 상황 자체에 공포를 느낀 적이 많다는 의미다. 아이가 자신의 잘못을 정확히 인지한 경우는 ‘선생님이 무섭게 혼을 냈지만 그게 당연하다고 느꼈다’며 이성적으로 대처하는 경우(52명)도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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