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투표지에 같은 필체 … 온라인도 동일 IP로 대리투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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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준호 통합진보당 진상조사위원장(가운데)이 2일 국회에서 진상조사 결과를 발표한 뒤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통합진보당은 이날 오전 9시 19대 당선인 워크숍을 열어 원내대표를 선출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진상조사 결과 발표로 워크숍은 갑자기 취소됐다. [오종택 기자]

조준호 당 진상조사위원장이 ‘총체적 부실·부정 선거’라고 규정한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경선에선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경선은 온라인투표와 현장투표를 합산해 비례대표 순번을 정했다. 여성의 경우 비례대표 홀수 순번을 배정받고, 남성은 짝수 번호를 받기 때문에 남녀로 구분해 경선이 진행됐다. 여성 비례대표 후보를 뽑는 온라인투표에서 민주노동당 계열의 윤금순(4917표) 당선인은 국민참여당 출신 오옥만(5212표) 후보에게 뒤졌지만 현장투표에서 크게 앞질렀다. 윤 당선인은 520표를 확보했지만, 오 후보는 71표를 얻는 데 그쳐 윤 당선인이 1번, 오 후보가 9번을 배정받았다. 이런 과정에서 현장투표뿐 아니라 온라인투표에서도 그야말로, “다양한 형태의 부실이 있었다”는 게 조 위원장의 설명이다.

 ①현장 대리투표=조 위원장은 “투표소 관리가 제대로 안 되는 바람에 동일인 필체가 여러 투표 용지에 나타나는 등 대리투표로 추정되는 행위가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오프라인 투표소 200곳 중 3분의 1정도를 샘플링한 결과 (이런 부정 사례가) 상당히 나왔다”고 덧붙였다. 한 지역선관위원은 “선거가 끝나도 투표 용지와 관련한 서류를 중앙당에 보내지 않았다”고도 했다. 선거 사무원이 투표 결과를 조작 해도 이를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는 얘기다.

 ②뭉텅이 투표=당 선관위가 투표함을 무효화시킨 7곳의 투표소 중에서 선거인 명부보다 실제 투표수가 많은 경우가 발견됐다. 이에 대해 통합진보당의 한 관계자는 “투표소에서 투표용지 뭉치의 투표용지를 뜯어서 배부할 때 1인당 한 장씩이 아니라 뭉텅이로 뜯어서 나눠주기도 했다”고 말했다.

 ③유령투표=조 위원장은 “샘플링 조사 결과 당원이 아닌 경우도 발견됐다”고 말했다. 지역선관위원이었던 한 관계자는 게시판에 “2선거구의 투표함은 봉인이 안 돼 있었고, 3선거구엔 투표용지에 날인이 없어 누가 투표했는지 확인이 불가했다”고 회고했다. 조 위원장은 또 “투표 마감 시간 이후에 온라인 시스템에 등록되지 않은 적지 않은 수의 현장투표가 집계돼 투표 결과를 신뢰할 수 없게 됐다”고 지적했다.

 ④온라인선 동일 아이피(IP)로 중복 투표=조 위원장은 “동일한 아이피(IP·인터넷 주소)에서 집단적으로 이뤄진 투표에서도 대리투표 등의 부정투표 사례가 확인됐다”고 말했다. 그는 “노동 현장에선 컴퓨터가 하나니까 쭉 와서 투표하는 경우도 있어 동일 아이피가 꼭 부정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샘플을 갖고 확인한 결과 투표자가 본인이 아니라고 하는 경우가 있었다”고 말했다.

 ⑤소스코드 열람 확인=조 위원장은 “당 사무총국의 당직자가 (서버관리업체에) ‘창(화면)에 들어가기 편하게 수정을 해달라’고 얘길 해서 4차례 소스코드를 열람했다”며 열람 사실을 인정했다. 당내에선 “소스코드를 열람했다면 투표 데이터 베이스에 접근해 투표 결과를 조작할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됐다. 다만 조 위원장은 “(소스코드 열람 후) 어떤 작업을 진행했는지를 기록하는 프로그램(형성관리 프로그램)이 있어야 하지만 아예 없어, 화면 수정만 한 것인지 다른 것(조작)을 한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고 말했다. 소스코드를 변경해 투표 결과를 조작했는지를 확인할 시스템 자체가 없었다는 얘기다.

·류정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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