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혁명의 숨은 주역-전지(Battery) [1]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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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중학교 시절 크리스마스 무렵이었는데, TV에서 크리스마스 선물과 얽힌 영화를 한 편 본 일이 있다. 여러 명의 아이들이 등장하고 이 아이들이 가지고 싶은 물건을 선물로 받게되면서 일어나는 일들을 영화로 만든 것이었는데, 80년 대 중반에 실존하던 최첨단 기기들이 대거 등장했던 것이 상당히 인상적이었던 영화였다.

장차 전자공학을 전공하기로 마음을 굳히고, 무전기와 같은 각종 통신장비에 유난히 관심이 많던 때였던 만큼 영화 속에 등장했던 이동전화는 충격이라 할 수 있을 만큼 깊은 인상을 심어주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중학생한테 이동전화라는 것이 실제로 있다한들 별 소용이 없었겠지만 그로부터 10여 년 이상 갖고 싶은 물건 1호는 이동전화가 되었다.

당시 TV에서 처음 보았던 이동전화는 워낙 크기도 크고 무겁게 보여 전화라기보다는 휴대용 무전기인 워키토키를 연상시킬 정도였지만 당시에는 그런 것이 별 문제가 되지 않을 만큼 신기하고 매력적인 물건이었다. 그로부터 꽤 오랜 시간이 지나고 국내에서도 이동전화가 대중화되면서 마침내 영화 속에서 보았던 바로 그 물건을 실제로 사용해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그런데 기대가 너무 컸던 때문인지 처음 보던 순간의 반가움과 설레임도 잠시뿐 생각했던 것과는 많이 달랐던 탓에 적지 않게 실망했던 기억이 있다. 잘 나가는 대기업에서 근무하던 선배 덕분에 처음 보게된 그 영화 속의 전화기와 비슷한 이동전화는 모토롤라의 다이나텍(DynaTAC) 8000X라는 모델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 당시로서는 아무나 사용할 수도 없을 만큼 비싼 최신형 이동전화였지만 워낙 전력 소모량이 많고 전지 성능도 떨어져 평소에는 전화기를 꺼놓고 필요할 때만 켜서 사용한다는 말을 들었었다.

모토롤라의 다이나텍8000X

모토롤라사에서 1973년에 처음으로 출시한 다이나텍이라는 이동전화는 무게가 무려 1089g 이었고, 그 뒤 10년이 지난 84년에 선보인 다이나텍 8000X는 이 보다 약간 가벼운 869g이었다. 요즘 출시되는 이동전화들의 무게가 대부분 50~100g 사이인 점을 감안한다면 휴대용(portable) 전화라기보다는 운반할 수 (Movable) 있는 전화기라는 표현이 더 적당해 보이는 무게였다. 물론 크기 역시도 만만치 않았는데, 이렇게 크고 무거우면서도 통화 대기 시간은 26시간, 연속 통화 시간은 2시간에 불과했다고 한다. 물론 이 수치는 가장 이상적인 환경일 때를 말하는 것으로 연속 대기 시간이 며칠 씩 간다는 요즘 이동전화들도 실제로는 이 보다 훨씬 대기 시간이 적은 것을 감안하면, 실제 대기 시간이나 통화시간은 턱없이 짧았던 것이 사실이다.

이렇게 초기의 이동전화가 크고 무거울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이동전화의 전력 소모량에 비해 전지의 성능이 충분히 따라주지 못했던 것이 아마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즉, 전지의 에너지 밀도가 낮았기 때문에 적절한 사용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그 만큼 많은 량의 전지가 필요했던 것이다.

이를 바꾸어 말하면 지금과 같이 작고 가벼운 휴대폰이 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그 만큼 효율이 높고 성능이 뛰어난 전지가 개발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물론 전력 소모량을 줄일 수 있는 다양한 기술이 개발되고, 전화기 자체를 소형화 할 수 있는 반도체 기술의 비약적인 발전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이런 기술이 발달을 한다하더라도 이동전화를 사용하기 위해 필수적인 에너지원인 전지의 성능이 이를 따라 주지 못한다면 아마도 지금의 이동전화 환경은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다양한 종류의 전지들이 일상생활에서 사용되고 있다.

비단 이동전화 뿐만이 아니다. 지금 우리주변에는 모바일(mobile) 시대라는 말이 전혀 이상하지 않을 만큼 다양한 휴대용 가전기기나 정보통신 단말기들이 사용되고 있다. 거실이나 방 한편에 자리 잡고 있던 TV나 카세트 플레이어, CD나 DVD 플레이어와 같은 가전기기들이 이미 주머니 속에 들어갈 만큼 작아져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 데스크탑 PC를 능가하는 멀티미디어 노트북에서부터 스마트폰, PDA, 포켓 PC와 같은 최첨단 정보통신 단말기들에 이르기까지 불과 20~30년 전에는 SF 소설에서나 볼 수 있었을만한 일들이 지금은 우리의 현실이 되어 버렸다. 하지만 아무리 최신 기술로 탄생한 휴대용 첨단 기기라고 하더라도, 전력을 공급해줄 전지가 없었다면 무용지물일 수밖에 없다. 특히 이러한 모바일 장치들은 무엇보다 좀 더 긴 시간동안 안정적인 전원을 공급할 수 있는 전지를 절실히 필요로 한다. 따라서 현재처럼 다양한 휴대용 기기들이 급속히 발전할 수 있을 수 있었던 바탕에는 전지 기술의 발전을 간과할 수 없다.

이런 이유로 에너지 밀도가 높고 효율이 좋은 전지를 개발하기 위해 세계의 내노라 하는 기업들이 전지개발과 생산에 매달리고 있으며, 전지 산업이 21세기 유망 산업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아울러 모바일 혁명의 시대라 불리는 21세기를 맞이하며,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늘 사용하고 있는 전지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좀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가져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김달훈
자료제공:pcBee(http://www.pcbe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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