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미술가 엘리아슨, 이번엔 태양열 램프에 꽂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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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2년 전 아이슬란드 화산폭발 때 나온 화산탄이 유리 만화경 속에 박혔다. 지구의 신생(新生) 돌 화산탄은 2m 높이 만화경 속에서 저 우주의 별처럼 무한 증식 중이다. 올라퍼 엘리아슨의 신작 ‘용암 만화경’이다.

만약 당신이 실내에서 찬란한 태양을 즐기고 싶다면? 또 도시 경관을 무지개빛 파노라마로 바꾸고 싶다면?

 덴마크 출신 올라퍼 엘리아슨(45)은 런던 테이트 모던 미술관에 초대형 인공태양을 들여놓아 서른 중반에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날씨 프로젝트’(2003)라는 제목의 200여 개 전구로 만든 이 작품은 200만 인파를 불러모았다. 그는 뉴욕 이스트리버에 33.5m 높이의 인공폭포(2008)도 만들었다. 덴마크 오르후스 아로스(ARoS) 미술관엔 260t짜리 색유리 전망대를 설치했다. ‘당신의 무지개 파노라마’(2011)라는 공공 건축 프로젝트다. 관객은 공중에 떠 있는 기분으로 걸어 다니며 무지개색으로 변한 도시를 보게 된다.

 과학과 미술을 접목해 ‘유사(類似)자연’을 연출하는 엘리아슨의 세 번째 한국 개인전 ‘불분명한 그림자’가 서울 청담동 PKM 트리니티 갤러리에서 열린다. 최근 내한한 엘리아슨은 “자연은 각기 다른 언어와 문화를 가진 사회구성원들이 공통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소재”라고 말했다. 거대한 자연현상을 전시장으로 끌어들이는 프로젝트로 이름났지만 이번 전시엔 조각·회화·설치 등 중소규모 신작 21점이 나왔다.

 그는 ‘빛의 미술가’다. “빛은 한시적이어서 매력적인 데다가, 보이지 않는 비물질인데 (다른 걸) 보이게 만들어서다”라고 설명한다. 보색관계의 잔상 효과를 응용한 ‘애프터이미지 스타(Afterimage Star)’, 가시광선을 나노미터 단위로 쪼개 스펙트럼을 그린 원형 패널이 그렇다. ‘보는 것이란 무엇인가’ 묻는 작품이다.

 2년 전 아이슬란드 화산 때 채취한 화산탄(火山彈)을 금빛 유리에 붙여 만든 ‘용암 만화경’도 있다. 엘리아슨은 “이 화산탄은 지구에서 가장 최근에 만들어진 돌이다. 용암은 액체에서 고체가 된 물체로 유리와 비슷한 성분이다. 용암을 유리에 끼워 넣어 그 개념이 충돌하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엘리아슨은 궁극적으로 우리가 세상에 어떻게 존재하는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의 실재는 무엇인지 질문한다. 이를 위해 그의 베를린 스튜디오에선 30여 명의 과학자·건축가·기술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작업한다. ‘과학을 품은 예술’의 한 정점이다.

 초대형 인공 태양을 만들었던 그가 요즘 심취해 있는 것은 ‘리틀 선(Little Sun)’ 프로젝트. 태양열 램프를 디자인해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아프리카 등지의 빈민에게 빛을 공급하는 사회 공헌 활동이다. 과학과 예술, 정치와 사회를 경계 없이 넘나드는 그에게 “과학자도, 사회활동가도 아니고, 왜 예술가가 됐나”라고 물었다. “예술가여서 역사가, 정치가, 미술관 관계자들을 모두 만나 얘기할 수 있어 다행이다. 정치가보다 예술가가 낫지 않나”라고 대답했다. 5월 31일까지, 무료. 02-515-94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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