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LS, 큰손에게만 유리 … 소액투자자는 찬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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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A증권사 프라이빗뱅킹(PB)센터를 통해 사모 주가연계증권(ELS)에 가입한 김모(55)씨. 5억원을 사모 ELS로 굴린다. 이곳에서는 저평가된 가치주를 미리 골라뒀다가 어느 날 그 주식의 가격이 많이 떨어지면 재빠르게 사모 ELS를 만들어 준다. 보수적인 종목으로, 값이 내렸을 때를 틈타 ELS를 만드니 손해 가능성이 작다. 이 센터에서 지난해부터 만든 30여 개의 사모 ELS 중 손실이 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2년 전 B증권사의 공모 ELS에 투자했던 박모(42)씨는 지난달 만기가 돼 돈을 찾았다. 원금의 80%만 건졌다. 두산중공업과 OCI가 기초자산이었다. 지난해 하반기 두산중공업 주가가 크게 내려 손실구간에 들었고, 결국 만기가 되도록 주가가 충분히 오르지 못해 손실이 났다. 요즘 웬만한 ELS는 6개월 안에 8%쯤 수익을 내며 조기상환된다는데, 자신만 운이 나쁜 것 같아 박씨는 더 속이 상한다.

 #B은행은 사모 ELS(ELS에 투자하는 특정금전신탁)를 만들 때 선취 수수료를 공모의 절반만 받는다. 공모의 경우 1% 안팎이지만 사모는 0.5% 정도다. 이 은행의 강남지역 센터 PB는 “거액을 투자하는 고객에 대해서는 그만큼 대접을 해 드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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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대세’인 주가연계증권은 원금 손실이 날 수 있는 상품이다. 최근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ELS 발행액의 75.6%는 원금 비보존형이다. 하지만 이런 손실 가능성은 공모와 사모, 즉 자산가가 투자하는 ELS와 월급쟁이가 투자하는 ELS에 똑같이 적용되지 않는다. 사모 ELS는 공모 ELS보다 질 좋은 경우가 많다. 공모 ELS는 주가 등락에 맞춰 만들기가 어렵다. 반면 주로 거액 개인투자자들이 투자하는 사모는 시장 상황에 발 빠르게 대응할 수 있어 상대적으로 안전하다. 게다가 사모 ELS는 수익률도 더 높다. 전문가들이 맞춤형으로 종목을 고르고 타이밍도 잡아 주기 때문이다.

 사모 ELS는 값도 싸다. 대규모 자금으로 사모 ELS를 만들 때는 증권사들이 경쟁적으로 수수료를 낮춰 받는다. 또 은행 등을 통해 판매될 경우 판매사도 사모 ELS 투자자에게는 선취 수수료를 깎아준다.

 돈 많은 이들은 더 안전하고 수익도 높은 상품을, 더 싸게 사고 있는 것이 ELS의 역설이다. 모르는 새 공모 ELS 투자자들이 차별 받고 있는 셈이다. 사모 ELS에 투자하려면 증권사마다 차이가 있지만 최소 3억원가량 필요하다. 공모는 100만원 단위로 투자 가능하다.

 다만 사모형이 늘 ‘위너’인 것은 아니다. 한 대형증권사가 2007년부터 지금까지 상환한 ELS 중 수익을 낸 비중이 공모는 93.7%, 사모는 92.3% 였다. 이 증권사 관계자는 “투자자가 자기 성향대로 상품을 설계했다 손실을 보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소액투자자들은 상대적으로 중도 상환이 많아 손실을 보기도 한다. 중도 상환 때는 10%가량 원금 손실이 난다. 올 1분기 상환된 ELS 8조9000억원 중 3390억원은 중도 상환이었다. 고액 자산가를 담당하는 한 증권사 PB는 “사모 ELS의 경우 투자자가 중도에 돈을 찾아간 경우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소액투자자들 중엔 ELS가 만기 6개월의 정기예금과 비슷하다 여기고 투자했다가 자금이 급해지면 손해를 보고 중도 상환하는 경우가 있다”고 덧붙였다. 한 자산운용사 대표는 “ELS는 분명 괜찮은 투자대상”이라며 “그러나 정확한 지식 없이 예금·펀드와 비슷한 상품으로 생각하고 투자했다 손해를 보는 이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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