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초대석] 앤써러사 이남 대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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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가 건물 사이사이로 주거용 단독주택이 드문드문 보이는 서울 역삼동 뒷골목의 5층짜리 붉은 벽돌색 빌딩. 1층 순두부집 옆에 난 계단을 올라가다보면 컴퓨터 단말기가 빼곡이 들어찬 사무실이 3,4층에 버티고 있다.

벤처기업 ㈜앤써러(http://www.ANSWERER.co.kr)다. 그리고 윗층. 씽크대며 소파며,영락없는 살림집이다. 이 회사 대표 이남(38)씨의 숙소 겸 사무실이다. 연초 건물을 살 때부터 살림집으로 쓰던 것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그는 이 공간을 떠나는 법이 좀체 없다.건강관리를 위해 최근 주변 산책을 시작했다지만,특별한 일이 없으면 밥까지 시켜 먹으며 종일 사무실에서 지낸다. 밤샘 작업도 예사다. 아침에 잠자리에 들어 오후 느지막히 일어나는 일도 잦다. 한번 작업을 시작하면 며칠 낮밤을 매달린다고 한다.바로 아래층 사무실에도 하루 한차례 내려올까말까다.

이 대표는 중학교 1학년때 가족을 따라 캐나다로 이민을 갔다. 국적도 캐나다다. 벤처기업을 하기 전에는 미국에서 목사 생활을 했다.미 텍사스에 위치한 한 침례신학대학원에서 박사학위도 받았다.

그러다 ‘우리 민족의 미래’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고,벤처창업으로 돌파구를 찾겠다고 결심하게 됐다. 지난 1996년부터 국내에 머물며 독학으로 프로그래밍을 깨우쳤고, 97년 미래소프트센터를 설립해 영어와 우리말을 번역하는 소프트웨어를 잇따라 만들어냈다.

올들어서는 ㈜앤써러를 따로 설립해 기존의 검색엔진보다 효율이 훨씬 높다는 ‘3차원 인공지능 검색엔진’을 개발해 상용화를 추진중이다.

지난달 30일 오전 11시, 평소 같으면 잠자리에 들어있을 이 대표를 깨워 인터뷰를 했다. 평상시의 생활리듬이 깨진 때문인지 얼굴은 부시시했고,머리카락은 군데군데 곤두서 있었다.

-왜 밤에 일하고 낮에 자나.
“밤샘 작업이 많다보니 아침에 잠자리에 들어 오후 2시쯤 일어나는게 생활화됐다. 오래 전부터 그런 생활을 해 왔고 프로그래머들과 밤새워 공동작업을 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대표가 낮에 잠을 자면 회사 일은 누가 하나.
“내 일은 개발업무가 70∼80%정도 된다. 나머지 시간에는 회사관리·비전설정·전략수립 업무를 한다. 스스로 개발업무를 하다보니 기술개발을 해야 한다는 압박감도 많이 느낀다. 영업 등 외부활동 때문에 시간낭비를 하고 싶지 않아 아주 중요한 건이 아니면 직접 나서지 않는다. 대외업무는 팀장들에게 위임한다.”

-목사 출신인데,벤처사업에는 왜 관심을 갖게 됐나.
“어렸을 때 신앙체험을 한 뒤 신학이 최상의 가치이며 나의 사명이라고 생각해 목사가 됐다.종교활동을 하면서 미래 문제를 많이 다루다 보니 벤처 쪽에 관심을 갖게 됐다. 한국의 미래를 좌우할 큰 기술이 필요한 것이다. 이런 면에서 디지털 테크놀로지를 이해할 필요가 있었다.인류가 발전해 온 건 언어능력 때문이었다.따라서 정보화 시대에는 언어가 가장 큰 장벽이 된다.모든 데이터가 영어로 돼 있는데 정보화를 위해선 언어장벽 해소가 필수적이다.그래서 번역 소프트웨어에 관심을 갖게 됐다.언어장벽을 깨야 한국의 정보화가 가능하다고 봤다.”

-프로그래밍을 직접 배울 필요까지 있었나. 우수한 인재를 채용해도 될것 같은데.
“기술 중심의 벤처에선 CEO가 실력을 갖춰야 한다. 안그러면 직원들에게 농락당할 수 있다.당초 계획과 달리 엉뚱한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도 많다. 사장이 프로그래머에게 끌려다니는 회사도 많이 봤다. 프로그래머를 고용해 월급을 줄만큼 돈이 없었던 것도 이유다.96년1월 프로그래머 1명을 가정교사로 채용해 1달반 정도 배웠고, 이후부턴 독학했다. 사업을 시작할 당시엔 신앙 갈등도 많았다.”

-지난해 번역 프로그램이 꽤 팔렸는데.
“회사 자료가 없어져서 확실치는 않지만 작년 매출이 한 7억원 정도 된다.지금은 앤써러에 인력을 집중 투입하느라 새로운 버전 작업을 못하고 있다.국내의 번역 프로그램은 기술적으론 아직 초기 단계다.”

-잘 나가던 번역사업을 왜 포기했나.
“작년말 중국에 다녀오면서 많은 것을 생각했다. 중국 시장의 어마어마한 성장 가능성을 보고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을 분명히 봤다. 한국이 인터넷 시대의 중심에 서기 위해선 차세대 인공지능 검색엔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야후와 맞먹는 업체가 일어나 패권다툼을 해야 하는데 그게 바로 우리다. 너무 큰 꿈이 생겨서 굉장히 흥분했다. 그래서 회사(앤써러)를 설립했다.번역사업은 완전히 포기한 것은 아니다. 언젠가 다시 도전한다.”

-목사로서의 활동은 완전히 그만뒀나.
“가끔 설교 부탁이 오면 한다.”

-직원들 중에도 크리스찬이 많을 것 같은데.
“직원을 채용할 때 종교가 뭔지 물어보고, 되도록 교회 출신을 많이 채용하려고 한다.그렇다고 너무 차별하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사내 종교활동도 하나.
“미래소프트때는 1주일에 한번 예배를 봤는데 요즘은 형식을 바꿔 월요일 오후에 30분∼2시간 정도 내 생각을 직원들에게 말해 준다. 비전·꿈·회사가 나아갈 방향 등이다.”

-목사와 벤처CEO 둘 중 어떤 생활이 더 마음에 드나.
“목회는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이 많아 안정된 체제다. 반면 벤처는 새로운 사람을 상대하고 경쟁자에게 시달리다보니 힘이 든다. 하지만 내가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다고 확신한다.”

-언젠가는 신앙인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지 않나.
“이 자체가 신앙생활이다.하나님과 이웃·사회를 섬기고 나라의 미래에 기여한다고 생각한다.하지만 이 사업만 평생 하고 싶지는 않고, 언젠가는 ‘희망을 가져야 한다’는 하나님의 뜻을 알려주는 ‘비전 교육사업’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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