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수성갑에 출마한 민주통합당 김부겸 후보의 4·11 총선 선거공보물을 넘기다 보면 6페이지에 의외의 인물이 등장한다. 광주 서구을에 출마한 새누리당 이정현 후보다. 자기 홍보를 하기에도 부족한 지면에 다른 지역, 그것도 상대 당 후보를 언급하는 건 이례적이다.
김 후보는 ‘광주 친박 與(여) 당선권…대구 野(야) 김부겸은?’이란 지역 일간지 기사를 캡처해놓고 “대구에서 당신 하나쯤은 살아야 해”라는 글을 통해 이렇게 술회한다. “대구에서 김부겸이 당선될 정도면 광주에서도 이정현 의원이 당선됩니다. 이 의원은 (새누리당) 박근혜 비대위원장 비서실장 격으로 오른팔입니다. 이 의원이 이기면 호남에 박 위원장의 강력한 교두보가 마련되는 셈이지요. 대선 때 대구에선 (내가 돼도) 어차피 박 위원장 몰표가 나올 겁니다. 그러니 호남에서 조금이라도 득표율을 더 올리려면 이 의원이 꼭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면서 김 후보는 진짜 하고 싶은 말을 한다. “그래서 나이 지긋한 분들은 김부겸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박근혜 대통령 만들려면 대구에서 김부겸 당신 하나쯤은 살아야 해’라고.”
이정현 후보가 각종 여론조사에서 통합진보당 오병윤 후보를 근소한 표 차로 앞서면서 첫 호남권 새누리당 국회의원의 탄생 가능성을 높이자 ‘박 위원장의 대선 가도를 위해서라도 대구도 김부겸 하나쯤은 당선시켜줘야 하는 게 아니냐’는 호소다.
김 후보는 자기처럼 ‘적지’ 출마를 자임한 이 후보에 대한 ‘동병상련(同病相憐)’을 여러 차례 표시해 왔다. 최근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서는 “저희 두 사람이 한 언론사가 일부러 마련해준 자리에 같이 앉았던 적도 있었다”며 “둘 다 참 서로 간에 짠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김 후보가 새누리당의 당선을 기원하는 듯한 발언을 ‘용감하게’ 할 수 있었던 건 광주 서을이 야권연대 지역에 들어가 민주통합당이 무(無)공천했기 때문이라는 게 김 후보 측 설명이다.
양원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