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력시장 '한겨울'…기업퇴출 뒤 일감 급감

중앙일보

입력

일용직 근로자 崔모(가명.59)씨는 7일 오전 4시30분쯤 쌀쌀한 바람을 맞으며 집을 나섰다. 崔씨가 찾은 곳은 서울 관악구 봉천5동 현대시장 사거리에 있는 건설직 근로자들의 인력시장.

이른 시간인데도 1백50여명의 남자들이 삼삼오오 모닥불 가에 모여 있었다. 이들은 드문드문 나타나는 일꾼 구하는 사람들에게 몰려가 "나도 좀 끼워주슈" "오늘도 공치면 일주일째야, 좀 넣어줘" 하며 사정했다.

오전 5시30분이 지나면서 사람들은 바빠지기 시작했다. 재수좋게 일자리를 얻은 사람들은 승합차나 지하철을 타고 건설현장으로 향한다.

崔씨도 여기저기 기웃거리면서 써달라고 부탁했지만 번번이 허탕을 치고 말았다. 崔씨의 말동무인 朴모씨는 이제 마흔을 갓 넘은 나이라 그래도 데려가지만 환갑을 바라보는 崔씨는 거들떠보는 사람도 없다.

이 때문에 누가 나이를 물어보면 崔씨도 늘 "쉰셋" 이라고 대답하지만 요즘은 팔팔한 젊은 친구들을 제치고 일감을 잡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崔씨는 "올해초만 해도 일주일에 두세번은 일감이 있었는데 최근에는 매일 허탕" 이라며 "아침 일찍 일어나 도시락까지 챙겨주는 집사람 볼 면목이 없다" 고 말했다.

부근 대폿집에서 막걸리 한잔을 마신 崔씨는 오전 7시쯤 불콰해진 얼굴로 봉천동을 떠나 구직 알선 용역회사가 있는 서울 용산역으로 향했다.

최근 경기 불안에 11.3 퇴출 조치까지 겹치면서 이처럼 일용직 근로자들이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생계를 위협받고 있다.

건설현장에서 일하기 위해 봉천동의 인력시장을 찾는 사람은 하루 1백50~2백명. 올해 초까지 매일 1백명 이상이 일을 구했지만 7월부터 경기가 나빠져 하루 50명 정도로 크게 줄어들었다. 그나마 지난주 퇴출 조치 이후 30명 정도가 일터로 나가고 있다. 10만원 하던 일당도 5만원으로 떨어졌다.

그러나 건설업체 관계자들은 내년이 더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대한건설협회에 따르면 지난 8월까지 꾸준히 증가세를 보이던 건설 수주량이 9월부터 감소세로 돌아섰다.

금탑엔지니어링 한남희(韓南熙)사장은 "최근 대규모 업체들이 휘청거리면서 중소 건설 업체들의 부도가 줄을 잇고 있다" 면서 "내년 상반기에는 외환위기 수준까지 경기가 악화할 것으로 보인다" 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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