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패트롤] 현대건설·대우차 운명의 갈림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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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 서열 2위 현대가 걱정스럽다. 그룹으로서 응집력을 잃고 허둥대는 모습이다.

채권단은 여차하면 모기업인 현대건설을 법정관리에 넣거나 대출금을 출자전환하겠다며 으름장을 놓는데도 뚜렷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외국에서 한달 만에 돌아온 오너 회장이 여기저기 호소하지만 말이 통하지 않고, 그가 경영권을 행사해온 현대전자도 현대건설과 다른 길을 걷겠다고 선언했다.

현대사태는 7개월 째 우리 경제를 옥죄어온 기업.금융 부실의 뇌관이다. 정부와 채권단은 3일 퇴출기업 명단을 발표하면서 현대건설을 연말까지 만기가 돌아오는 어음과 회사채를 막아주는 조건을 달아 부도를 유예하는 '기타' 로 분류했다. 그런데 반응이 좋지 않자 5일 채권은행장 회의에서 출자전환 카드를 내놓았다.

국내외 건설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고 대북사업에 깊숙이 관여해온 현대건설에 끌려왔던 정부와 채권단이 10월 말부터는 현대에 압박을 가하고 있다.

이제 현대로선 오너의 사재 출자와 서산농장 매각 등의 추가 자구계획으론 통하지 않을 것 같다.

채권단이 신규자금 지원을 중단하기로 한 마당에 한달에 2천억원 가까이 돌아오는 물대어음을 막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현대가 이번주 초 얼마나 강도있는 자구책을 내놓느냐에 따라 현대건설의 운명이 판가름날 것이다.

그러나 부실기업에 대한 정리작업마저 '부실하게' 끝날까 걱정이다. 은행이 하는 것을 보면 답답하다.

진즉 처리해야 할 기업을 질질 끌고오다 퇴출기업으로 내걸고, 시장이 걱정하는 큰 기업은 '조건부 회생' 길을 제공했다. 그래도 퇴출 결정으로 은행 손실이 불어나 공적자금 지원 규모도 늘어나게 생겼다.

8일 혼자 힘으로 설 수 없는 은행에 정부가 공적자금을 넣어 금융지주회사로 편입시키는 수술계획이 나온다.

역시 부실기업인 대우자동차 문제는 여전히 복잡하다. 제너럴모터스가 예비실사를 마치고 인수 여부를 고민하는 가운데 6~15일 1천7백억원의 진성어음이 돌아온다.

채권단은 인원감축 등 구조조정 계획에 노조가 동의하지 않으면 신규 자금을 지원하지 않겠다고 압박했다.

자금을 지원받지 못하면 대우차는 부도를 맞게 된다. 이번주 초가 대우차의 운명을 결정하는 중요한 시기가 될 것이다.

퇴출기업이 발표되기 전 3일 연속 종합주가지수가 50포인트 이상 올랐다. 기업 구조조정에 대한 기대감이 반영됐다. 이제 발표 내용에 대한 평가는 6일부터 시장이 할 것이다. 52개 퇴출기업 명단을 발표했다고 일이 끝난 게 아니다.

정작 문제는 지금부터다. 경기가 나빠지는 시기에 기업퇴출이 이뤄지고, 날씨마저 추워지는데 일자리를 잃을 사람이 수만명이다.

기업들은 연말을 앞두고 돈 나갈 곳은 많은데 금융시장은 더욱 빠듯해질 것이다. 경제는 벌써부터 추운데, 정치는 여전히 싸움질이다. 다가오는 겨울, 서로 보듬고 추위를 이겨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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