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시이 마모루가 그린 '서늘한 동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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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바리 국제파타스틱영화제 비평가상(99), 마이니찌 영화콩쿠르 애니메이션상(99), 포르투갈국제영화제 최우수애니메이션상· 심사위원특별대상(99), 그리고 각종 국제 영화제 초청... 일본에서조차 개봉을 하지 않고(일본에서는 현재 상영중이다) 국제 각종 대회의 상을 휩쓸고 다니던 애니메이션 한 편이 있었다.

우리나라에도 이미 99년에 부산판타애니메이션 영화제에서 상영되었지만, 잘 알려진 영화제가 아닌지라 보지 못한 사람들이 많았고, 그랬기 때문에 더욱 이 뛰어난 일본애니메이션에 대한 기대의 말들이 많았다.

3년의 제작기간과 80억원이 넘는 제작비, 1천여명의 인력이 투입된 이 문제의 〈인랑〉(人狼)이라는 작품이 드디어 12월 2일 국내에서 개봉된다.

대원C&A와 일신 픽처스에서 공동 수입하고 일신 픽처스에서 배급을 맡은 〈인랑〉은 우리나라 개봉 애니메이션 2호가 되는 것이지만, '암시장에 떠돌아다녀 이미 볼 사람은 다 봤다'는 기존 일본애니메이션과는 역시 다르다.

오시이 마모루가 시나리오를 쓰고, 신예 오키라 히로유키가 감독을 맡은 〈인랑〉(인간 늑대)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일본 근현대사를 배경으로 그린 "오시이 마모루식 동화"다.

2차 세계대전 패전 후 십 몇 년. 1960년대 일본은 경제성장을 위한 자구책을 내지만 이로 인해 도시에는 많은 실업자들이 생겨나고, 이들은 무장투쟁을 일삼는 반정부세력으로 발전, '섹트'라 불리며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오른다.

자치경찰들이 이들의 진압에 한계를 보이자 정부는 '수도경'을 창설하고 무력진압을 시작한다.

일명 '케르베로스'라 불리는 수도경의 핵심 특기대 소속 '후세 카즈키'. 그는 늑대같은 전투본능만을 가진 인간전투병기로서 뛰어난 전투능력을 지니고 있다. 그는 반정부세력 진압과정에서 테러리스트 '빨간두건단'의 폭탄운반책 소녀를 자폭 전에 쏘지 못해 특기대에서 퇴출당하게 된다. 그러면서 그는 '아마미아 케이'라는 여자를 만나게 되고 그녀를 통해 소녀에게 지은 죗값을 덜어내려 한다.

이 작품을 한마디로 말하기는 참으로 어렵다. 스토리로 설명할 수 있는 작품이 아니기 때문이다.

'늑대'와 '빨간두건단'이라는 소재에서 느낄 수 있듯이 이 작품은 동화 〈빨간 두건〉을 중심 모티브로 깔고 있다. 그리고 동화에서와 같이 냉혹한 늑대의 모습을 보여주며 관객들의 일말의 기대를 못본척 지나간다.
또한 영화 전반에 흐르는 여주인공 아마미아 케이의 나래이션은 영화의 결말을 암시한다.

오시이 마모루의 실사영화 〈붉은 안경〉(86), 〈케르베로스-지옥의 파수견〉(91)의 뒤를 잇는 〈케르베로스 3부작〉중 세번째 작품 〈인랑〉은 그의 만화 〈견랑전설〉에서 보여준 '늑대로 살수밖에 없는 인간'의 모습을 또한번 보여준다.

이 작품이 전반에 깔고 있는 특징이라면 '리얼리즘'이다. 사실적인 시위장면, 총격전, 총알이 벽에 박히는 것까지 애니메이션식의 리얼리티를 창조해냈다.
이는 표현뿐만이 아니라 인물캐릭터에도 잘 드러나는데, 동양적인 얼굴에 사실적인 신체구조, 그리고 대사를 하는 입모양까지 기존 일본애니메이션의 한계를 훌쩍 뛰어넘고 있다.

일본애니메이션을 꺼리는 프랑스에서 먼저 개봉되어, 개봉과 동시에 흥행 1위를 하며 많은 언론으로부터 극찬을 받았고 일본에서는 지난 6월 개봉해 현재까지 상영중이다.

영화가 끝나고 엔딩 자막이 올라가는 동안에도 감동에 젖어 차마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는 전율을 오랜만에 느낄 수 있을 것이다. 12월 9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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