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선 누드집' 파문과 삼불의 춘화감상

중앙일보

입력

기자가 아는 언론계의 중진 한 분은 사회 통념에 비춰 다소 별난 지론을 가지고 있습니다.

도덕 군자들을 어이없게 할수도 있는 그 분의 주장인즉 신문사에서 정기 구독하는 국내외 정기간행물에 '플레이보이' 를 포함시키자는 겁니다.

그 분의 덕에 기자도 한때 편집국에서 버젓하게 그 잡지를 동료들과 함께 완상(玩賞)할 수 있었는데, 엊그제는 그 분께 당신의 소신을 확인할 겸 안부전화를 드렸습니다.

" '플레이보이' 요? 누드 사진들도 아름답지만, 기성 아카데미즘이 놓치고 있는 흥미로운 이론들이 순발력있게 등장하는 잡지가 바로 그겁니다. 1970년대에 벌써 텔레파시 이론을 거론했죠. 예전 갈브레이드 같은 거물 학자들도 정기적으로 기고를 했구요. 글쎄요. 그건 아마 어떤 메카니즘일 겁니다. 쾌락의 영역을 솔직하게 인정하자는 사람들은 그만큼 사고가 탄력있는 것 아닐까 싶은 겁니다."

그 분 말씀은 당신이 기본적으로 도덕주의를 지지하지만, 남과 구별되는 것 하나는 '쾌락을 도덕의 대립 항목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는 별도의 소신이 있다는 겁니다.

멋쟁이 선배분의 신선한 발상에 힘입어 기자도 속생각 하나를 꺼내놓을 참입니다. 다름 아닌 연예인 김희선 누드집 파동입니다.

세간의 관심이 잠시 썰물인듯 보이지만, 이 사안은 올해 연예계와 출판계 양쪽에서 '올해의 뉴스' 에 동시 랭크될 것이 분명하고 오늘은 김희선 측이 낸 출판금지 가처분 신청에 대한 네번째 공판이 열립니다.

기자는 한마디로 이번 사안을 '근엄한 도덕주의의 사회적 억압구조가 연출한 상징적인 출판 사건' 이라고 포괄적으로 규정하려 합니다.

그 점 때문에 아연 중차대한 사안이구요. 사람들 관심은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나 하는 스캔들 쪽에 쏠렸었지만, 그것도 황당한 호기심입니다.

본질은 김정일 국방위원장까지 팬으로 두고 있는 인기 연예인이 사회적 분위기라는 덫 때문에 자유로운 자기 표현을 망설이는 한국적 상황의 해프닝으로 봐야 합니다.

따라서 오늘 공판 결과와 상관없이 사기혐의 고소(김희선 측)와 손해배상 청구소송(김영사 측)을 푸는 당사자간의 극적 화해가 선결되야 하고, 이에 앞서 사회적 분위기 전환이 요구된다고 기자는 봅니다.

본디 누드집 출간은 우리 사회의 통념을 바꿔줄 근사한 기획이라고 기자는 믿고 싶습니다.

따라서 저는 김희선 누드집은 물론 본디 10권 이상으로 기획된 '고품위의 세미 누드집' 의 출간 성사를 고대하는 쪽임을 밝히고 싶습니다.

우리가 이웃나라 미야자와 리에의 '산타페' 만 들여다볼 이유는 없으니까요. 여기서 미술사학자 삼불 김원룡 선생의 숨겨진 일화를 들려드릴까 합니다. 그 분은 당신 지갑 안에 멋진 춘화(春畵)한 장이 들어 있었고, 이걸 늘 몸에 지니고 다녔다고 합니다.

천하의 삼불이니 왜곡된 관음(觀淫)취미가 아닌것은 분명합니다. 가늠컨데 멋진 아취 아니었겠습니까? 또 마음의 환기창이기도 했구요. 그래서 되묻고 싶은 겁니다.

그런 아취를 왜 사회적으로 공유하면 안되는지요. 세상은 변화하고 있는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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