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아이디어에서 길을 찾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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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지난달 28일 서울 역삼동 삼성SDS멀티캠퍼스에서 초등학교 영어강사 킬리 매덕이 아이디어를 설명하고 있다. 그는 모바일앱을 통해 여행 정보를 실시간으로 해당 지역 현지인에게서 얻는 방안을 내놓아 삼성SDS가 주최한 ‘sGEN KOREA’ 공모전 결선에 올랐다.

작은 아이디어에도 귀를 기울이는 기업이 늘고 있다. 성장은 더뎌지는데 경쟁은 더 치열해지고 있어서다. 조직 내 젊은 직원뿐 아니라 조직 밖 일반인에게도 아이디어를 구하는 ‘오픈 이노베이션(Open Innovation)’이 적극적으로 이뤄지는 이유다.

 최근 서울 여의도 LG트윈센터 회의실. 구본준(61) LG전자 부회장이 14명의 젊은 직원들과 마주 앉았다. 이들은 LG전자 내 과장급 이하 직원들의 자발적 모임인 주니어보드 대표들. ‘LG전자판 청문회’로 불리는 이 자리에서 직원들은 “회사 미래를 걱정하는 직원이 많다. 10년 후 미래를 위해 무엇을 준비하고 있느냐”며 날 선 질문을 던졌다. 구 부회장은 회사가 집중 육성 중인 사업에 대해 하나하나 설명했다.

 1991년 시작된 주니어보드는 2009년 회사가 실적 부진에 시달리면서 활동을 강화했다. 불안해하는 직원들을 대신해 경영진을 만나 회사 전략을 듣는가 하면 조직 내 자부심을 회복하기 위한 배지 착용 캠페인을 주도했다. 지난해 말 임직원 2000여 명이 거리에서 옵티머스 LTE 홍보 전단을 돌린 ‘질풍가도 캠페인’도 이들의 아이디어였다.

구본준 부회장(左), 고순동 사장(右)

 2010년 10월 취임 후 독한 DNA를 강조해 온 구 부회장에게 주니어보드는 든든한 우군이다. 매년 두 차례 경영진이 주니어보드와 만나오던 관례를 깨고 더 자주 만나기 시작했다. 구 회장은 직원들이 “휴일 한나절만 일해도 수당을 받을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하자 이를 “바로 제도화하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LG전자 관계자는 “회사의 위기 앞에서 경영진의 전략을 묻는 당돌한 모습이 구 부회장이 직원들에게 원하는 모습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지난달 28일 서울 역삼동 삼성SDS멀티캠퍼스 18층 국제회의실. 무대 중앙에서는 초등학교 영어강사인 킬리 매덕의 발표가 한창이다. 그는 모바일 앱으로 여행객들에게 실시간 여행정보를 제공하는 방안을 설명했다. 발표가 끝난 다음에는 “어떻게 앱을 알릴지” 등의 질문이 쏟아졌다. 입사 면접 못지않은 긴장감이 강당을 가득 채웠다.

 이날 행사는 삼성SDS가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한 ‘sGEN KOREA’ 공모전 결선심사였다. 지난해 말 시작된 이 행사에는 3000여 종의 아이디어가 접수됐다. 지원 자격에 제한을 두지 않은 덕에 22세 여대생부터 59세 타 기업 임원까지 제안자도 다양했다. 사업 아이디어를 국민에게서 얻는다는 생각은 이 회사 고순동(54) 사장이 냈다. 그는 평소에도 “신성장 동력인 아이디어를 외부에서 구하지 않으면 고사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해왔다. 고 사장은 “배경이 비슷한 회사 직원끼리의 아이디어에는 아무래도 한계가 있다”며 “이제 인재뿐 아니라 아이디어도 수혈하는 시대”라고 말했다.

오픈 이노베이션(Open Innovation)

열린 혁신. 기업이 제품과 서비스를 연구·개발·상업화하는 과정에서 외부 기술과 지식을 활용해 효과를 높이는 경영전략이다. 최근에는 의사결정에 참여하지 않던 내부 직원들이 낸 아이디어를 현업에 반영하는 것으로까지 의미가 넓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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