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 최우선, 고난도 수술도 척척 … 척추 건강의 ‘길’ 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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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사회가 되면 피할 수 없는 복병이 있다. 퇴행성 척추·관절 질환이다. 주행거리가 많은 자동차의 타이어가 닳는 것과 같다. 65세 이상 인구 10명 중 8명이 퇴행성 관절염을 앓고 있다는 통계가 있다. 척추·관절 질환은 족쇄다. 활동성을 뚝 떨어뜨려 여생을 힘들게 한다. 걷기는커녕 집안에서의 거동도 불편하다. 누워 지내는 환자가 있으면 가족 구성원의 삶도 엉망이 된다. 지금까지 척추·관절 수술은 힘들고 위험한 수술로 인식했다. 따라서 대부분의 환자가 수술을 기피하고 고통을 안고 살았다. 다행히 척추·관절분야의 치료술도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다. 과거엔 자포자기에 빠졌던 80대 이상 어르신들이나 만성질환자도 수술을 받고 거뜬히 완쾌할 정도로 수술이 간편하고 정확해진 것이다. 수술 후 통증 역시 크게 줄였다. 중앙일보헬스미디어는 최근 발전하고 있는 척추·관절질환의 최신정보와 함께 국내에서 잘나가는 전문 병원을 모아 ‘척추·관절 병원(센터) 베스트’ 특집을 마련했다. <편집자 주>

가천의대 길병원 척추센터 김우경 교수(오른쪽)가 퇴행성 디스크 환자에게 최소침습 수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 수술법은 디스크의 일부만 현미경으로 보면서 약 6~7㎜의 작은 구멍만을 만들어 증상을 없앤다. [가천의대 길병원 제공]

척추질환을 보는 ‘4차병원’. 가천의대 길병원 척추센터에 따라붙는 별칭이다. 다른 병원들이 해결하지 못하는 척추질환을 치료하고, 기술을 전수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2006년 인천 지역에 개설한 척추센터는 척추질환 치료의 가장 효율적인 치료 가이드를 제시한다. 우리나라 척추 환자는 병원을 들어설 때부터 혼란스럽다. 척추를 담당하는 의사들이 신경외과와 정형외과로 나뉘어 있기 때문이다.

길병원 척추센터는 성격이 다른 두 과의 장점을 고루 갖춘 종합센터다. 환자에게 최적·최고의 의료를 제공하기 위해 통합센터를 만들었다. 가천의대 척추센터 이상구 소장은 “당시 척추에 문제가 생긴 환자들은 신경외과로 가야 할지 정형외과로 가야 할지 고민을 많이 했다”며 “이를 종합적으로 진단하고 치료할 센터를 마련할 필요가 있었다”고 말했다. 길병원 척추센터가 문을 연지 5년째. 지금은 경인지역을 대표하는 척추센터가 됐다. 지난해 진료 인원 2만 명, 수술건수 1200례 이상을 기록했다.

내비게이션 시스템으로 신경 손상 줄여

가천의대 길병원 척추센터를 찾는 환자 중에는 고난도 수술을 필요로 하는 환자가 절반 이상이다. 대학병원 특성 상 여러 곳에서 치료를 받다가 마지막 수단으로 이곳을 찾는다. ‘후종인대골화증’이 대표적인 질환이다. 척추와 척추를 연결하고 있는 인대(근육)가 딱딱해지면서 척수신경을 압박하는 질환이다. 이 질환은 진행속도가 느려 처음에는 단순한 목 디스크로 오인하기 쉽다. 그러다 병이 악화하면 척수신경을 압박해 서서히 하지마비가 온다. 제대로 걷지를 못하는 환자들은 중풍으로 오인하기도 한다. 이 질환의 수술은 까다롭기로 정평이 나있다. 하반신으로 가는 신경을 다치지 않도록 하면서 자라는 뼈를 제거해야 한다.

많은 후종인대골화증 환자가 길병원 척추센터 문을 두드리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최신 치료 시스템 때문이다. 길병원 척추센터는 고해상도의 수술 현미경과 신경유발전이검사 및 내비게이션 시스템을 함께 운영한다. 신경유발전이검사는 수술 중 척수 및 척추신경의 상태를 지속적으로 감시하는 시스템이다. 수술 중 나타날 수 있는 신경손상을 최대한 방지해준다. 덕분에 후유증 없는 안전한 수술을 할 수 있다.

최소침습 수술로 병든 부위만 제거

길병원 척추센터는 최소침습 수술로도 유명하다. 정상조직을 다치지 않게 보호하며, 해당 부위만 제거하는 기술이다. 그만큼 까다롭고 의료진의 섬세한 기술이 요구된다.

척추센터 김우경 교수(신경외과 전문의)는 이 분야의 선두 주자다. 퇴행성 목디스크 질환을 치료할 때 뼈를 이식하거나 인공디스크 대체물질을 넣지 않는다. 정상 디스크를 그대로 쓸 수 있도록 ‘전방경유 경추 추간공 확장술’을 실시한다. 디스크 일부만 현미경으로 보면서 약 6~7㎜의 작은 구멍만을 만들어 증상을 없앤다. 디스크 손상을 피하고, 허리를 지나는 동맥도 건드리지 않으면서 문제가 된 부위를 찾아내는 기술이다. 그만큼 고도의 집중력과 뛰어난 감각을 요구한다.

부드러운 디스크가 신경을 누르거나 디스크 탈출은 아니더라도 신경구멍이 좁아져 신경을 압박할 때도 이 방법이 효과적이다. 김 교수는 2003년 인도네시아에서 열린 학술대회에 초청받아 수술법을 시연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척추고정술을 할 때 ‘경피적 척추경나사못 고정’ 수술을 하면서 흉터와 출혈량을 확 줄였다. 광범위한 척추 고정수술에도 수혈 없이 빠른 회복이 가능한 이유다. 또 척추 내비게이션 장비는 의료진이 정확한 수술을 하도록 유도해 혈관이나 연부조직의 손상을 최소화한다.

암센터와 연계, 척추 전이암도 치료

장기에 생긴 암세포는 가장 먼저 척추로 전이된다. 문제는 척추신경이 요새와 같은 뼈로 둘러쌓여 있어 치료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길병원 척추센터는 지난해 개원한 암센터와 유기적으로 연계해 척추 전이암 환자를 적극적으로 치료하고 있다. 척추센터에서는 전이성 척추암에 대해 수술과 방사선 치료를 함께 동원한다.

길병원 암센터는 방사선 치료기 ‘노발리스 티엑스’를 보유하고 있다. 2009년 아시아 최초로 들여온 이 치료기는 전이암에 탁월한 효과를 보여 ‘꿈의 방사선 암치료기’로 부른다. 현존하는 방사선 치료기종 중 가장 작은 0.1㎜의 정밀도를 자랑한다. 방사선이 정상조직은 건드리지 않으면서 암세포만을 정확하게 공격한다.

권병준 기자

인터뷰 이상구 가천의대 길병원 척추센터 소장

-길병원 척추센터의 가장 큰 경쟁력은.

“1년에 척추 수술을 1200건이 넘게 하지만 단순 디스크 환자는 얼마 되지 않는다. 대부분 1, 2차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가 상태가 호전되지 않거나 수술이 어려운 환자들이 우리 병원을 찾는다. 특히 고령자 중에는 심장질환이나 당뇨병·골다공증 같은 질환을 동반하는 경우가 많다. 수술할 때 신경 손상을 줄이기 위해 수술 중 모니터링 시스템을 활용하고 있다.”

-척추센터는 활발한 연구 활동으로 유명하다.

 “척추센터 의료진은 현재 디스크 재생에 관한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 동시에 국내에서 진행 중인 척추 인공디스크 개발에도 참여하고 있다. 이처럼 상급 의료기관이라면 임상과 연구 두 가지 모두에 집중해야 한다. 그래야 환자에게 더 좋은 치료법을 제시할 수 있다. 척추센터에서는 매년 전문의를 위한 카데바(해부용 시체) 워크숍도 개최한다. 이를 통해 척추수술 경험이 적은 전문의들은 최신 기술을 습득해 실력을 쌓을 수 있는 기회를 갖는다.”

-척추센터의 향후 계획은.

 “우리 척추센터는 개원 당시부터 ‘가장 완벽한 치료는 예방’이라는 목표를 설정했다. 사람들은 척추와 관련된 최신 수술 방법에는 관심이 많으면서 정작 척추질환 예방에는 소홀하다. 이 때문에 일반인을 위한 올바른 척추 지식과 관리 방법을 널리 알리는 교육 프로그램을 확대할 계획이다. 현재 척추 디스크의 재생에 대한 다양한 연구가 진행 중이다. 우리도 수술을 하지 않고 척추 연골을 재생하는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보다 적극적인 투자를 할 예정이다. 대학병원에서 척추센터를 확대한다는 의미는 단순히 외래나 수술환자를 늘리기 위한 시설과 장비에 투자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 국민의 척추를 더 건강하게 만들고, 척추질환을 예방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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