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철 타고 골프연습장 다닌 재미교포, 일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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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허가 26일 마야코바 클래식에서 우승한 뒤 트로피를 들어보이고 있다. [AP 연합]

“1라운드에 죽 쑤는 사나이.”

 한국프로골프투어(KGT)에서 존 허(22·한국이름 허찬수)에 대한 평가는 이랬다.

 재미교포인 존 허는 2009년부터 지난해까지 국내 투어에서 뛰었지만 유달리 1라운드 성적이 좋지 않았다. 형편이 어려워 연습라운드를 거의 하지 못했고, 1라운드에서는 코스를 잘 몰라 실수가 잦았기 때문이다.

 그는 1990년 뉴욕에서 태어나자마자 한국으로 돌아와 살았다. 꼬마 때부터 한국에서 골프를 배웠다. 그러나 한·일 월드컵이 한창이던 2002년 다시 미국으로 갔다.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인한 도피성 이민이었다고 한다.

 존 허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골프 실력을 갈고 닦았다. 아주 두각을 나타내지는 못했지만 2009년부터 국내 투어에서 뛰었다. 그는 국내에 연고가 없어 서울 미아리에 있는 어머니 친구 집에서 잠을 잤다. 분당에 있는 연습장까지 2시간 가까이 전철로 이동해 훈련을 했다. 그는 “골프 가방을 메고 전철을 타면 사람들이 이상한 눈초리로 쳐다봤다. 하지만 놀러 가는 게 아니라 직장으로 가는 것이기 때문에 창피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경제적인 어려움보다 더 괴로운 것은 차별이었다. 그는 국적이 미국이라 외국 선수 Q스쿨( 정규투어 출전권을 목표로 기량을 겨루는 것)을 통해서 한국 대회에 나와야 했다. 그는 ‘검은 머리 외국인’이었다. 외국인 선수 참가 제한 규정 때문에 아예 대회에 못 나간 적도 있었다.

 2010년 신한동해오픈에서 최경주 선수를 꺾고 우승하면서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는 지난해 말 25명을 뽑는 미국 PGA 투어 Q스쿨에 도전했다. 27위에 그쳤으나 2명의 선수가 다른 자격으로 출전권을 따는 바람에 추가모집으로 턱걸이 합격했다.

 그런 그가 지난 26일 멕시코 리비에라 마야의 엘 카멜레온 골프장에서 벌어진 PGA 투어 마야코바 클래식에서 우승했다. 대회 기간에 주요 선수들은 월드골프챔피언십 매치플레이에 참가했다. 그렇다 해도 신인이 5경기 만에 PGA 투어에서 우승한 것은 대단한 일이다. 우승 상금 66만6000달러를 받은 존 허는 올 시즌 강력한 신인왕 후보에 올랐다.

 존 허의 우승은 드라마틱했다. 마지막 날 무려 8언더파를 쳤다. 선두를 달리던 베테랑 로버트 앨런비(호주)가 마지막 홀에서 더블보기를 한 덕에 연장에 들어갈 수 있었다. 연장 8개 홀을 치른 후에야 우승컵을 들었다. PGA 투어 사상 두 번째로 긴 연장전이었다. 그러나 존 허는 해냈다. 나이는 젊지만 그는 골퍼로서 이미 길고 험한 여정을 걸었다.

 존 허는 “이제 겨우 시작이다. 눈 앞의 우승보다는 이런 경험을 통해 얼마나 단단한 선수로 성장할지 지켜봐 달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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