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버티기?' 정수장학회 이사장 성명서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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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필립 이사장

새누리당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에게 ‘정수장학회’는 장학회 이상의 의미가 있다.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정(正)자와 고 육영수 여사의 수(修)자에서 딴 ‘정수’란 이름만 봐도 그렇다. 박근혜 위원장이 그런 정수장학회와 단절을 시도하고 있다. 박근혜계 핵심 의원은 23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최필립(84) 장학회 이사장이 알아서 물러나주는 것 말고 다른 해법은 없다”며 “최근 박 위원장과 가까운 인사가 최 이사장을 만나 사퇴가 바람직하다는 뜻을 전달했다”고 말했다.

 공식적으로 박 위원장은 이미 장학회와 단절 상태다. 2005년 2월 28일 이사장직을 공식 사퇴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재인 민주통합당 상임고문 등이 “정수장학회는 장물”이라고 주장하는 등 공세가 이어지고 있다. 박 위원장과 가까운 최 이사장이 자리에 있어 여전히 박 위원장이 장학회를 ‘원격조종’하는 것처럼 의심을 받고 있다고 본다. 그러니 박 위원장을 생각해서라도 최 이사장이 자진해서 물러나야 한다는 게 박근혜계 인사들의 생각이다.

 박 위원장도 20일 방송기자클럽 토론회에서 “2005년 이사장을 그만둬 그 후로 저와 장학회는 관련이 없다. 장학회가 분명하게 어떤 입장 표명을 할 필요가 있다”고 했었다. 장학회 이사진에 공을 넘겨버린 듯한 뉘앙스였다.

 박 위원장과 최 이사장은 각별한 관계로 알려져 있다. 1978년 50세의 나이로 27세의 ‘영애’이던 박 위원장의 공보비서관 역할을 하던 그는 10·26 사태가 벌어진 뒤에도 박 위원장 곁을 지켰다. 2002년 박 위원장이 한나라당을 탈당해 한국미래연합을 설립했을 당시에도 운영위원으로 도왔다. 박 위원장이 어려웠던 시절일수록 곁에 있으면서 30년 이상 인연을 쌓아온 셈이다. 그렇기 때문에 최 이사장이 쉽사리 물러나지 않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이날 최 이사장은 서울 정동 사무실에 출근한 뒤 ‘정수장학회가 국민께 드리는 말씀’이란 A4용지 2장 분량의 성명서를 냈다. 그는 성명서에서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7년 전 이사장에서 물러나 장학회와는 아무 관련도 없는 박근혜 전 이사장을 과거 인연을 이유로 정치 쟁점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장학회가 정치적 논란의 대상이 되니 이사진은 참담한 마음”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거취 문제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장학회 관계자는 “최 이사장은 오늘 발표한 것 외에 사퇴 요구 등에 대해선 달리 할 말이 없다는 입장”이라고 전했다. 새누리당 관계자는 “최 이사장이 일단 버티기를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박 위원장은 정계에 입문하기 전인 95년부터 한나라당 대표 시절이던 2005년까지 10년간 정수장학회 이사장을 지냈다.

◆최필립=평양 출생으로 박정희 전 대통령의 비서관 출신. 1974년 대통령 의전비서관, 79년 공보비서관을 지냈다. 스웨덴·뉴질랜드 대사 등을 역임한 외교통이다. 2005년 이후 정수장학회 이사장을 7년째 맡고 있다. 일제 시절 독립운동을 하다 해방 후 미 군정에서 친일 경찰 청산에 앞장섰던 최능진 경무부 수사부장(1899~1951)의 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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