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 체육늘려라, 아니잠깐만, 여건되면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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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서울 A중학교는 지난 19일 새 학기부터 3학년 국어·기술 수업을 한 시간씩 줄이기로 결정했다. 앞서 17일 서울교육청으로부터 "올 1학기부터 체육 수업을 확대하라”는 공문을 받았기 때문이다. 체육시간을 더 확보하려고 이들 과목의 수업시간을 축소키로 한 것이다.

 하지만 21일 시교육청으로부터 또 한 장의 공문이 내려왔다. "학교 현장의 원활한 준비와 효율적 운영을 위해 체육 수업 확대 계획을 임시 중단한다. 별도 지침이 나갈 때까지 기다리라”는 내용이었다. 당장 3월부터 체육 수업을 확대하기 어렵다는 일선 학교들의 반응에 따른 긴급조치였다.

 23일 교육청은 다시 "여건이 되면 실시하고 안 되면 방과후 활동에 스포츠 클럽을 운영하라”고 알려왔다. A중학교 관계자는 “체육 수업을 늘리라고 해서 어렵게 시간을 확보했는데 어이가 없다”며 “개학이 코앞인데 이렇게 오락가락하면 어떻게 하느냐”고 토로했다. 정부가 주요한 학교폭력 대책 중 하나로 내놓은 ‘중학교의 체육 수업 확대 계획’이 삐걱거리고 있다. 정부가 실행 가능 여부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채 ‘3월부터 시행하라’며 일방적으로 밀어붙였기 때문이다.

 지난달 6일 발표된 정부 계획에 따르면 전국의 중학교는 새 학기부터 주당 체육시간을 1·2학년은 3시간에서 4시간으로, 3학년은 2시간에서 4시간으로 늘려야 한다. 전국 3153개 중학교 191만 명이 대상이다. 당시 교육과학기술부 관계자는 “체육 수업을 통한 활발한 신체 활동과 정신 단련이 학교폭력 근절에 효과적이라는 판단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러한 취지에도 불구하고 현장에선 적지 않은 어려움과 문제점이 드러나고 있다. 우선 체육시간을 더 확보하기 위해서는 다른 과목이나 기존 창의적 체험활동 시간을 줄여야만 한다. 하지만 기존 교과목을 축소하면 해당 교과 교사들의 반발이 거세고 학부모들로부터 항의도 우려된다. 이렇다 보니 학교들은 ‘창의적 체험활동’을 줄이려는 움직임이 많다. 창의적 체험활동은 지나친 교과 지식 위주의 교육에서 벗어나 창의성·인성을 함양하는 체험 중심의 교육을 하자는 취지에서 정부가 2009년 도입했다. 중학교는 통상 주당 3시간을 운영하며 ▶학급회의 ▶동아리 ▶봉사활동 ▶진로 교육 등을 주로 하고 있다.

 인천의 한 중학교 진학교사는 “진로교육 역시 학생에게 매우 중요한 교육”이라며 “체육 수업을 위해 진로 지도 시간을 줄인다는 건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격”이라고 비판했다. 체육시간을 확보하더라도 시설이나 강사 인력 부족 탓에 제대로 수업을 진행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경북 경산의 한 교사는 “시골 학교는 늘어난 체육 수업을 맡아줄 강사를 구하기가 쉽지 않다”며 “경험 없는 일반 교사에게 체육 수업을 억지로 맡기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학교를 사랑하는 학부모 모임의 최미숙 대표는 “아무리 좋은 취지의 정책이라도 현장 상황이 고려되지 않으면 실패한다”며 “이제라도 교과부와 교육청, 학교가 머리를 맞대고 실현 가능한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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