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왕이 최고의 CEO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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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경영서는 최근 출판의 한 흐름을 이루고 있다. 경제경영서 부문 베스트셀러에 오른 책들 가운데 경제용어 한마디 없이 역사 속 인물과 사건만 언급한 책이 적지 않다.

역사를 소재로 한 경영서가 인기를 끄는 이유는 익숙한 언어와 흥미로운 사건으로 독자들이 경영의 본질에 쉽게 다가설 수 있도록 도와주기 때문이다.

역사가 단순히 과거에 불과하다면 아마 이같은 접근은 불가능할 것이다.이런 시도가 빈번하다는 사실 자체가 역사는 돌고 돈다는 것, 아니 한발 더 나아가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변치 않는 가치가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뉴욕타임스가 선정한 지난 1천년간 최고지도자로 뽑힌 영국 엘리자베스 1세를 소재로 한 경영서 〈위대한 CEO 엘리자베스 1세〉는 리더로서의 자질이란 5백년의 세월도 훌쩍 뛰어넘는 불변의 속성을 지니고 있음을 증명해 준다.

〈패튼 리더십〉을 쓰기도 했던 저자가 본 엘리자베스 1세(1533~1603)는 원칙을 중시하고 늘 중용을 꾀하는 계몽 군주인 동시에 때로는 거짓약속 등 술수에도 능한 마키아벨리형 군주. 저자는 그가 어느 쪽에 섰든지 항상 완벽한 리더로서의 덕목을 갖고 있었음을 크게 열 개, 작게는 1백36개 항목으로 나누어 보여준다.

반역죄로 몰려 친어머니 앤처럼 런던탑에서 처형될 위기에 빠져 있던 시절부터 왕위에 올라 에스파냐 무적함대를 물리치고 번영을 이룬 일 등이 '생존' '이미지 창출' '대의명분 구축' '위기의 승리에로의 전환' 등의 큰 항목들에 묶여 연대순으로 정리돼 있다.

저자는 엘리자베스 1세가 왕위에 오른 시기를 부도 직전의 기업에 비교한다.신교와 구교의 갈등, 프랑스. 스코틀랜드와의 외교적 마찰, 극심한 인플레이션 등 나라의 어느 한 부분도 제대로 굴러가지 않았다.

난세에 영웅이 난다고 엘리자베스 1세는 국가 부도 위기를 극복하고 오히려 영국을 '태양이 지지 않는 나라' 로 만든 위대한 CEO라는 점을 잘 부각하고 있다.

책을 읽다 보면 엘리자베스 1세는 너무나 완벽한 리더이기 때문에 오히려 그에게서 교훈을 얻는다는 사실이 벅차게 느껴진다.

인자한 왕이지만 어디서 선을 그어야 하는지 알았고, 소박했으나 왕의 권위를 유지하는 이미지의 중요성도 본능적으로 깨우쳤다.

타고난 왕가의 기품에다 배움에의 열정, 놀라운 경영감각 등 한 사람이 갖고 있기엔 너무 많은 재능을 가진 정말 위대한 왕이었던 것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이 모든 장점을 배우기는 어려운 것이 사실. 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엘리자베스 1세로부터 배울 수 있는 큰 가르침은 상상력, 즉 EQ(감성지수)는 언제 어디서나 힘을 발휘한다는 것이다.

로마가톨릭 신자였던 배다른 언니이자 선왕인 메리1세 치하에선 영국국교회 신자임에도 불구하고 살아남기 위해 로마가톨릭 신자인 척 하기도 했고, 논쟁이 겉돌지 않는 이상 다른 의견을 얼마든지 수용하면서도 왕의 권위가 무시당할 경우에는 가혹했다.

이런 태도는 엘리자베스 1세가 원칙에 충실하지 않았다는 식으로 비춰질 수도 있다.그러나 실은 미래와 현재를 조화시키는 유연한 상상력 덕분에 오히려 원칙을 지킬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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